이 의원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앞서 질의하던 광우병 소의 ‘다운(기립불능)’증상에 대해 작년 청문회에서
질의한 적이 없다”는 얘기인데 박 국장이 질문 도중 갑자기 비상시국회의 참여 여부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면서 이를 부인한 것으로
오해를 사고 있다는 것.
이걸 해명이라고 하는 건지...--; 입장이 바뀐게 없다면, 지금이라도 공개적으로 소고기 수입 반대를 말하세요
국회에 의해 청문회 보고서 채택이 거부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청문회에서 "귀신이 땅을 샀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바 있습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투기,증여, 탈영 의혹 외에도 결정적으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많은 반대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임명장 수여로 이미 야당이 반대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인 김성이 장관을 오기 인사로 임명한 바 있는 이 대통령은 다시한번 국회의 의견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야당이나 국민 여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이명박만의 '오기'를 다시한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같은 날 삼성 떡값 수수 논란으로 청문회조차 열리지 못했던 김성호 국정원장도 임명장이 수여됐습니다. 결국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큰 낙오자 없이 이명박 코드에 맞는 '코드 인사'들을 '오기 인사'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과 함께 하는 이명박 정부 참 햄볶아요.
대운하? 그냥 밀어붙이면 되요. 국민 동의, 국회 동의 같은거 필요없어요. 토론하면 무시하면되요. ㅎㅎ
이명박 대통령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 비서관회의에서 인선파문에 대해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말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요?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약간의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상황 설명까지 덧붙여 말하면, 장관 임명 잘했는데 별일 아닌 문제로 정치권과 여론에서 난리치고 있다는 상황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대통령이 이미 저질렀던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등이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것으로 확대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정확히 일말의 뜻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말 [一抹] [명사]{주로 ‘일말의’ 꼴로 쓰여} 한 번 스치는 정도라는 뜻으로, ‘약간’을 이르는 말. 정확히 모르시겠다고요? 영어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실용영어라 잘 아시겠죠? 일말(一抹) a touch 《of》;a shadow 《of》;a suspicion 《of》;a tinge 《of》
지금과 같을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모를까봐 알려드립니다. "우리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
혹시 일말의 뜻을 모르고 썼다면 모를까, 알고 썼다면 대통령의 현 상황인식은 국민 정서와 너무 떨어져있습니다. 청와대들어가니 현장과 격리될 것 같다고 했지만, 이미 이 말 한마디로 격리되어 있음을 밝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불과 4일만에!!!
아래 대통령 발언 붙입니다.
다소 출발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으며, (인사검증 관련) 자료를 활용하지 못한 점이 있다
(장관 내정자 낙마는) 현실적인 정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관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현실을 탓할 게 아니라 극복하려는 노력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서 국민에게 일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코드인사라고 비판하던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 쓰려다 인사파동을 불렀다고 쓰고 있습니다. 코드인사와 아는사람.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는 사람이 뭔가 친근해 보이기는 합니다. 사실 코드인사라는 말은 최초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뒤로 인사가 있을때마다 코드인사라는 비판이 있었죠.
그런데, 누구든 코드인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사권자의 정책에 맞는 사람, 정책방향에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장관들은 그의 코드에 맞는 인사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실용주의에 맞게 정책을 실행하기에 가장 맞는 사람들을 고른것입니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문제는 그러기에 도덕성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은 장관들 낙마의 단골 사유입니다. 코드가 맞는 어윤대 총장의 낙마 사유도 부동산 투기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소한 위의 문제들에 고르고 검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한달간 밤새우며 5천명을 검증한 결과로 고른 인물들입니다. 낙마한 3명을 제외하고도 의혹은 너무 많습니다.
결국 인재풀의 한계로 귀결됩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인재풀이 너무 좁다고 항상 비판해왔습니다. 돌려먹기라고 하더니, 이제는 좌파 10년 동안 대부분 인재들이 "가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범위가 좁아졌다고 합니다. 핑계일 뿐입니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인재풀의 한계를 자인하는 말일 뿐입니다. 이명박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은 이정도 도덕성 추락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꼴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전반적에 걸쳐 냉소적으로 평가한다면, 소위 "능력"있으신 분들 중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등 각종 문제 안 일으킨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것입니다. 청백리를 볼 수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참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나왔던 한나라당 후보 검증위의 이명박 후보 청문회의 발언들 정리입니다. 주로 신문기사를 참조해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청문회 전문도 참고로 넣었습니다. 이후보의 답변은 지금까지의 입장이나 해명과 전혀 다른 것이 없고 동일합니다. 의혹들만 재확인한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병역의혹 의혹 - 기관지 확장증으로 병역 면제 질문 - 기관지 확장증은 완치가 안된다는데? 해명 - 기적적으로 나았다.
도곡동땅 차명 계좌의혹 해명 - 1985년에 개인 재산을 사는데 내가 남의 이름으로 살 이유가 없다. 해명 - 매각대금이 내게 한푼도 안 왔다
질문 - 자금출처 부족액이 32억1800만원에 달하는데 자금출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해명 - 지금 22년전 자금출처를 대 달라고 하면 보통사람은 자신이 없을 것
질문 - 김만제 전 포철 회장이 했다는 발언을 서청원전의원외 2명이 들었다는 것 해명 - 아무리 정치지만 그렇게 근거가 없는 말을 하냐
질문 - 도곡동 땅이 이 후보 본인의 땅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해명 - 그 땅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큰 재산인데…
1977년 구입한 서울 서초동 꽃마을 소재 4필지 투기성 매입 의혹 해명 - 토지매입대금은
4000만~5000만원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현대건설에서 중동 대형 건설공사 수주 대가로 준 특별상여금으로 그 땅을 산
것같다
충북 옥천의 임야 50여만평 매매의혹 해명 - 그 산은 쓸모없는 산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려면 얼마든지 더 좋은 곳을 살 수 있었다 투기가 아니라 지역사람들이 사달라고 해서 사준 것
뉴타운지역 균형촉진지구 지정 해명 - 시장일 때는 서울시 경험과 기업경험을 갖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결심이 섰는데 친인척이 하는 회사에 정보를 줬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위장전입 해명 -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만은 공부를 잘 시켜보자’는 소시민적이고 평범한 욕심으로 그렇게 했다
다스 실소유 관련 질문 - 김재정씨는 다스의 최대 주주이면서도 회사의 배당도 못 받고 경영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해명 - 그 회사의 공장을 내가 지어줬다. 회사가 국세청이나 검찰청 못지않은 감사 시스템을 지녔는데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느냐
BBK 관련성 과거 (장신대) 장학재단의 감사로 있을 때 장학금 4억원을 활용하는 담당자가 와서 부탁을 하기에 (BBK 투자를) 소개했다. 그러나 BBK와 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과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 그럴 일 없다. 있을 만한 관계가 아니다 많은 정치인이 (에리카김을) 찾아가서 ’(관계가) 있다하라’고 했다고 한다.
BBK에 투자했다 돈을 떼인 ’심텍’ 사장이 김씨와 함께 고소한 것 내가 ’(김씨에) 연락이 안 된다’고
하니깐 나까지 집어넣어 고발한 것 같다 검찰에서 해결됐다고 하니까 굳이 (맞고소할) 필요가 없었고 나중에 사과를
받았다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했던 미국 연방검사의 수사보고서에 이 전 시장이 BBK 직원의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이명박의
반대편에 서면 안 된다’고 협박해 공포에 떨었다고 기록돼 있다는 설 있을 수도 없다. 그런 말을
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한 것
LK-e뱅크 설립 경위 김경준씨와 가족을 소개받은 뒤 (김씨의) 아버지도 나에게 부탁했다. 사이버 금융은 미래산업이기 때문에 같이 하게 됐다
이상은, 김재정씨의 금융계좌가 이들의 거주지와는 먼 이 전 시장 소유의 건물이 있는 서초동 법조단지 지점에 개설돼 있다는 점 서초동에 그 회사(다스) 서울지점이 있다
사회환원 시사? "제 작은 성취(재산)가 저만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제 성취라는 선물을 준 우리 사회에 감사하며 이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문회 전문(more 클릭)
이명박 모두 발언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청구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적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겸허한 자세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들에게 저희 한나라당은 실망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저 자신 많은 의혹과 검증을 통해서, 때로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시원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오래 참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의 검증청문회를
기다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40여 년간 제 삶은 졸졸 흐흐는 냇물 같은 즐기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태풍 부는 노도와 같은 파도 속에서 저는
헤쳐 나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길거리에서 좌판을 놓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노동자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거쳐서 서울시장 지금 이 자리에 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기회를 주신 우리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저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 많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아니든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 되었습니다. 국민 앞에 매우 솔직하게 기억나는 것은 기억나는 데로 진실되게 말하고자 합니다.
이 청문회의 과제 중에는 40~20년 전에 일이 많이 논의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성실히 답변하겠습니다. 저는
정권교체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앞장서겠습니다. 국민여러분 오늘 청문회에서 많은 이해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국민들을
대신해서 나온 검증의원들에게 격려와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
- 오전에 살살 다뤘다는 평가가 있어 세게 다루겠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병역문제는 아주 민감한
문제입니다, 특별히 한나라당에 있어 지난 대선에 대통령 후보자신이 아니라 자녀의 병역문제 때문에 대선에 패배를 한 악몽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에 질문 드리겠습니다. 후보께서는 병역을 필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군대를 가고 싶었습니다. 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라도 갔을 겁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입학을 하고 재래시장에서
새벽에 일어나서 환경미화하면서 다녔고 어머니는 그 시장에 일하셨습니다. 2년간 그 일을 하니깐 힘이 들어서 좀 쉬고 싶고 군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군대를 가서 논산훈련소에 도착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마는 뜻밖에 기관지 확장증 등 몇 가지 요인으로
퇴출당했습니다. 제가 군의관에게 군대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국은 논산 훈련소에서 돌아오게 됐습니다."
- 그 때 판정 받은 기관지 확장증은 그런데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주로 아침에 누런 가래가 많이 나오고 그 증상이 심해지면 폐기능 저하나 호흡곤란 증세가 잇는데 실제 이런 증상이 있으셨습니까?
"네, 일하는 2년간 많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기가 심해졌습니다. 감기가 조금 덜하구나 생각하고 감기약 정도를 먹었고 저는 병원에 갈 솔직한 형편에 못되었습니다."
- 지금도 그 증상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그 증상이 없습니다. 흔적만 남아있고 완쾌되었다고 합니다."
- 하여간 이런 이유 때문에 군면제가 되셨는데 징집면제 판정을 받으신 후 바로 그 다음 달에
대구에 섬유회사에 취직했고 바로 그 다음 달에 현대건설로 자리로 옮기셨는데 이 때 두 회사에 취직을 하실 때 신체검사를 받은
적이 없으셨습니까?
"아닙니다. 1963년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 때 논산 훈련소 자원입대 했는데, 그 때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때
신체검사 받는 과정에 이상이 있어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논산훈련소 때 받은 것과 똑같은 병명으로…."
- 제 질문은 그 다음 취직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증상이 있었는데 입사하는 데 문제가 없었느냐? 그 질문입니다.
"그 때는 65년도 학생운동을 했기 때문에 직장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방에 조그만 가내업 같은 섬유회사에 갔다가
거기서 한두 달 있다가 서울에 올라와 현대건설에 7월달에 입사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때 현대건설은 종업원이 90명 정도였고
신체검사 절차도 없었습니다."
- 군대도 갈 수 없는 질병인데 회사에는 생활 지장이 없었습니까?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느낌을 받았고 노동자 생활을 할 때 제가 일정한 일자리를 얻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학생운동을 하면서 중정이 저의 일자리를 막았습니다. 그때 현대건설이 비록 적었지만 그 회사에
들어갔지만 몸이 아프다 안 아프다 가릴 것이 없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 후보의 자서전에 의하면 입사한 후에 정주영 회장, 신입사원들과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다른 사람들은 나가 떨어졌으면서 혼자 후보만 남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기관지 확장증세도 있고 몸이 아파 군대도 갈 수 없었던 분이
그런 분이 술을 밤새 마셔도 되는지?
"그렇지만 제가 처한 환경에서 사주, 회사 대표가 오늘 저녁 신입사원을 모아 놓고 술을 먹자 여기서 낙후된 사람은 뒤로 물러서라
하면서 시작된 모임에서 저는 아마 내일 당장 Tm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끝까지 버텼습니다, 아마 저
같은 환경에 처하면 누구든지 그럴 것입니다."
- 기관지 확장증은 잘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고 하는데 아시는 대로 대통령의 직무는 격무라고 하는데 이러한 질병을 갖고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이 병을 제자신이 노력했습니다. 입사해서는 3끼를 정상적으로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서 일은 최선을 다했지만 이병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잠깐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45년전 군대를 가고 싶었지만 못 갔던 대학생이었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돌아왔을 때 다시 재래시장 청소원으로 돌아왔고 그런 어머님께서 저를 껴안고 아들이 몸아 앞서서 군대를 못 보낸 것에 대해서 그
당시 어머니의 표정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의심을 받을 때 우리아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군대를 가지 못했는데 너는 전방에 가서 근무하라고….
정치권에서 군대를 안 갔다고 하는데, 전 미안한 마음으로 전방으로 보냈고 지금도 종합 진단을 받을 때는 그 흔적이 크게
남아있습니다. 저는 신체검사를 받을 때 마다 꼭 한군데 더 찍습니다. 이상이 있다고 저는 이 병이 완쾌되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갖고 있습니다."
- 후보께서는 77년 옥천군 임야 50만평을 매입하셨다가 5년 후 82년 처남 김재정씨에게
매각하셨습니다. 개발정보를 통해 투기를 하고 처남 명의신탁을 한 의혹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질의 하겠습니다. 혹시 옥천이
행정수도 후보지로 유력하는 개발정보를 알고 취득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명세기 대한민국 제일 큰 건설회사의 CEO 대표입니다. 옥천 그렇게 못 쓰는 험산을 제가 투기했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땅을 사게 된 경위는 제가 매입하기 1년 전일 겁니다. 주민들께서 마을 회관을 짓기로 해서
그 땅을 험한 산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고향을 둔 이사가 회사에서 살수 없는 비업무용 토지니깐 고향사람들 마음회관 짓는데 도와달라고 해서 근 6개월 이상 끌었을
겁니다. 그분들께 많은 신세를 졌기 때문에 그 이후에 마을회관을 다 지었다고 감사의 마음이 있었지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건
투기가 아니고 그분들에게 사주었다고 한 표현이 옳습니다. 지금도 쓸모없고 팔리지도 않는 땅을 제가 샀겠습니까? 투기가 아니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 후보님이 이 땅을 매입할 당시에 이 땅에 인접해 있는 옥천군 동의면이 후보지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일대에 대단한 부동산 바람이 불었는데 혹시 이러한 사실은 모르셨습니까?
"몰랐습니다. 이 산은 400명이 넘는 공동소유였습니다. 이 당시 행정수도라는 소문이 있었으면, 마을에 사람들이 총회를 열어서
저희한테 팔았겠습니다. 팔리지 않으니깐 총회를 열어 현대에다 사달라고 하자. 험한 산을 떼 가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의 원하는
마을회관을 짓자고 총회에서 결의해서 한 것입니다."
- 부탁을 했던 분이 현대건설의 관제담당으로 있던 정택규 이사가 맞으시죠?
“그것을 중간에 주선 분은 옥천에 고향을 둔 정택규 이사이고 이일을 주관하신 분은 이장이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내려가서
촌장을 만났더니 그 당시 팔리지도 않는 땅 현대가 사주어서 고맙게 마을회관 지었다고 해서 제가 오늘 마을회관 사진도
찍어왔습니다.
- 후보님 답변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이 있는데요, 당시 민원성 부탁이었으면 회사가 매입하면 되지 왜 굳이 후보님 개인이 매입했는지 그리고 직장상사에게 이렇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부탁을 드릴 수 있었는지 어떻게 가능한지요?
"조금 전에 설명한대로 회사가 살 수 없었습니다. 당시는 비업무용 토지는 기업이 살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로 부탁한
사람도 있었지만 나중에 개인적으로 사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때 그분께 깍듯이 했습니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과 나이가
비슷했지만 비록 이사지만 웬만한 중역에게 가깝게 얘기할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 정택규이사께서는 옥천 땅을 매입하는 그날 서초동 법조타운 지역에 있는 또 다른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한사람이 그것도 같은 날 옥천 땅과 서초동 땅을 매입했는데 옥천땅은 행정수도 후보지로 관련이 있구요, 서초동 땅은
법원단지 조성계획과 관련이 있습니다. 후보께서는 마을주민의 요청을 받아들인 게 아니고 후보님측에서 매수를 한 게 한 의혹이 있는
게 아닌가요?
"재차 말씀드립니다만 그 산은 쓸모없는 산입니다. 오지이며 차도 들어갈 수 없고 경사가 심한 산이기 때문에 제가 이 땅을
매입했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제가 투기를 한다면 값나가는 다른데도 많은데요. 저는 없습니다. 회사는 비업무용 토지는 살수가
없기 때문에… 같은 날짜도 아닐 것입니다 정확하게 따지면 제가 서초동 땅은 제가 산 게 아니고 회사가 사서 관리한 것이고, 옥천
땅은 아마 비슷한 날짜일지 모르지만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 마을사람들 진술 들어보니까 그 당시 이 땅 초본 둘러싸고 마을의 주민투표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투표가 부결이 되자 정택규 이사와 이분 마을주민이 다른 주민들에게 현대건설이 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동의서까지
받아가면서 이 땅을 매입하려고 했는데 혹시 이 사실이 맞습니까?
"모르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총회를 했지만 물론 그 산을 팔면 우리는 들어갈 수 없느냐 걱정했답니다. 우리 마을
회관 지으면 이용할 수 있고 산도 누가 사더라도 이용할 수 있으니깐 이 총회에서 결의된 것이구요. 제가 이 땅을 투기목적으로
했다면 그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회를 열어서 투기하려는 사람에게 팔려고 했겠습니까. 공공의 목적이기 때문에 총회에 올려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 82년 이 땅을 김재정씨 앞으로 등기 이전했는데요? 그 이유는?
"그 땅은 못 쓰는 땅이었기 때문에 실은 팔아달라고 했습니다. 팔지를 못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자기이름으로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 마을주민 진술에 의하면 80년도 후보께서 이 지역에 내려와서 마을주민 15명과 10여일에 걸쳐서 이산에 잣나무 오십만 그루를 심고자 했는데요 이 사실이 맞는지요?
"제가 그렇게 한가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중동사업이 한창이었을 때이기에 그 산에 제가 가보지 않고 등기가 되었습니다.
그 위에 한두 번 간 것은 울산조선소에 드나들 때입니다. 10일씩이면 있으면서 식수한다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 산이 상당히 오지에 있지요. 가봤는데 마을에서 산을 두 번이나 넘어야하는 오지에 있는데 후보님께서도 쓸모없는 땅이라는 했는데 김재정씨는 왜 취득했습니까?
"본인이 할 수없으니깐 자기이름으로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 당시 후보님 재산도 많았는데 왜 처분했는지?
"가지고 있어도 아무소용도 없고 파는 게 좋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복덕방 내놓을 시간도 없으니깐…."
- 이 땅을 3000만원에 취득하셨다가 2500만원에 취득하셨다고 했는데, 맞습니까?
"저는 3000만원 주고 산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을 못하겠습니다마는 2500만에 팔렸습니다. 그 차이가 왜 그렇게 된
것이냐 제 처남이니깐 싸게 팔았을 수도 있는 것이고 거기에 농협에서 잣나무를 심어가지고 더더욱 팔릴 수도 없게 되어있습니다."
- 후보님이 심지 않았지만 잣나무 50만 그루가 심어져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인가?
"이번에 잣나무 근저당 되었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습니다. 근저당한 것이 차명한 것이 아닌가 이야기했기 때문에 깜짝 놀래서 내
이름으로 샀다가 차명이라고 한 것 보니까 말입니다. 농협에서 잣나무를 심고 잣나무를 산주가 근저당을 설립했는데 그게 오해가 돼서
지금 차명을 했다 오해를 사는 것 같습니다."
- 가격을 조사해보니까 기준시가가 3배정도가 올랐습니다. 3000만원 정도에 취득하셨다면 그 당시 시세가 9000만원 정도로 볼 수 있는데요 후보님께서는 2500만원에 헐값에 처분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확하진 않구요. 지금 판다고 내놓더라도 얼마 받을 수 있느냐 알아봤는데 그 값도 전국에서 그렇게 값이 안 오른 산도 처음 일 것입니다."
- 끝으로 하나만 확인 하겠습니다. 옥천군 동의면이 행정수도 후보지인 사실을 아셨습니까?
"저는 그 지역에 가보지 않았구요, 그 소문에 대해서 땅 값이 오른 것 같으면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저는 가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 <신동아>에 따르면 1필지당 4~5천만원이다고 했다. 대략 얼마인지 기억 안나나.
"이 땅 갖게 된 경위가 76년 현대건설이 중동에서 역사적 대형공사 수주해서 정주영 회장이 간부들한테 특별보너스를 줬다. 물론
제가 제일 많이 받았다. 받아서 통장을 받았는데 받고 난 다음에 바로 출국했다. 정택규 이사께서 찾아와서 정 회장 지시를
받았는데 '이 돈을 은행에 맡겨두면 인플레이션으로 소용이 없고 이명박 사장은 온 세계 돌아다니느라 살 시간이 없으니까 이 통장을
니가 대신 하라'고 해서, 가족에게 통장을 주라고 해서 줬고 그것을 가지고 이 땅을 사서 관리한 것 같다. 그래서 이 땅을
얼마에 사고 어떤 경위인지 모르고 있었다. 내 땅이 아니라 회사 관리하다가 나중에 값이 오르면 팔아서 통장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그 땅 자체는 나한테 알릴 필요 없었다. 정택규 이사께서 사실은 정주영 회장 명을 받아서 통장관리 하다가
퇴직할 때 통장을 돌려주지 못하고 이 땅을 돌려준 것이다. 그 확인서를 써 놓은 것도 있다. 검증위에 제출됐다."
- 결론적으로 토지 취득대금은 얼마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내가 안 샀기 때문에 모른다."
- 정택규씨가 현대건설 퇴직한 때는 언제인가.
"1980년, 정택규 이사가 갑자기 건강문제 있어서 퇴직했다. 그래서 퇴직할 때 그분이 나를 찾아와서 사실은 이 땅을 관리
하려고 샀는데 이를 팔아서 통장을 줘야 되는데 건강이 안 좋아서 못했다. 이 통장을 총무과에 맡길 테니까 이 사장이 나중에 이를
처분해서 가져가면 된다고 해서 그 때 알았다."
- 객관적으로 따져보니까 취득할 때부터 회수가 지났는데 상식적으로 이 후보 말대로 그 당시 2억원인데 아무리 통장관리를 안 해도 그 큰 금액이 들었는데 귀띔이라도 안 해줬나.
"당시 회사 상황 잘 이해되면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 이 후보 명의로 됐다면 지방세 등 재산세 이 후보 집으로 배달 안됐나.
"물어봤더니 그 당시 그 지역이 개발할 수 없는 지역이 돼서 정택규 이사가 자산을 관리를 하니까 이 토지는 회사가 관리하고 나중에 통장을 주는 거니까 회사가 관리를 했을 것이다."
- 그 당시 이 외에 부동산이 많았나.
"제가 가진 것은 집과 이 토지, 서울시 채권, 옥천땅이 있었다."
- 이 후보 말씀이 사실이겠지만 일반적 상식기준으론 자긴 재산의 가장 큰 부분을 모르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 등기부등본을 조사하니까 1필지는 89년에 매수가 됐다. 정택규 이사 퇴직 이후 아닌가.
"89년도에 이를 알게 된 구체적 경위가 있다. 당시 현대가 세무사찰을 받으면서 국세청이 전 재산을 조사했다. 그 때 이 땅이 회사 땅이냐, 개인땅이냐 하면서 개인땅이라고 해 알게됐다."
- 현대 그룹에선 대표이사의 자산을 관리해 줬나본데 사장 외에 특별상여금을 관리한 적이 있나.
"해외사업 하는 사람에겐 아파트 주고 집도 지어졌다. 현대 사장이 되면서 해외를 많이 다니고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 기업 하셨던 분들은 이를 이해할 것이다."
- 일반 상식으로 자기의 가장 큰 재산 목록을 전혀 모르고 퇴직했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그렇게 큰 재산 가지고 있으면서 모른다는 것은 대권후보로 나오면서 일반시민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거부반응 심하니까 우회적으로
피해 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당시 땅 살 때는 정치적 꿈꾸지 않았다. 회사가 커지고 국가경제 커지는 데 만족했다. 회사가 커지는데 미쳐 지냈다. 제가 산
게 아니고 회사가 사서 관리를 해서 나중에 팔아서 현금으로 주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알 필요도 없고 회사가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 그 당시 상법 규정을 보면 특별상여금 줄 때 주주총회를 한다. 주총을 통과했나.
"77년도면 기업공개 전이다. 몇 년도에 공개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주주가 정주영 회장이니까 특별한 절차를 안 밟았다."
- 강남국 도곡동 땅을 81년 형님, 김재정씨 명의로 현대건설로부터 매입했다가 포스코 매각해 거대 이익을 얻은 게 사실인가.
"알고 있다."
- 매입 자금 출처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두 사람에게 매각 대금 받기 전 까지 자금 출처를
제시했는데 제출하지 않았다. 김재정씨는 도곡동 토지 매입에 8억3000만원, 다스 투자에 6억6000원, 그 밖에 부동산 10건
구입에 30여억원이 쓰였다. 이 중 도곡동 땅 매입 출처 자금이 7억5000만원이고, 검증위가 추정한 자금 7억7000만원을
합해도 자금출처는 15억원이다. 자금출처 부족액이 30억원을 넘는다. 이 자금 출처 제시도 항목과 금액만 제시하고 구체적
입증자료가 없다. 이상은씨의 경우 출처를 요구했는데 도곡동 토지매입 7억3000만원은 '현대건설 협력업체'라고 쓰고 특별한
출처가 없다. 이에 대해 해명하라.
"지금 두 분이 22년전에 돈을 어디서 구해서 땅을 샀는지 묻고 있다. 상식적으로 22년전 서류는 웬만한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김재정씨는 이미 부친간에 개발회사를 운영했고, 이상은씨는 소가 300마리 넘는 큰 농장을 운영해고 전기 설비회사를
운영했다. 둘이 자주 만났고, 부동산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일했으니까 돈을 구해 샀을 것이다. 22년 전 얘기를 아구 맞추라고
하면 못 맞춘다. 김대중 정권 들어와서 포스코 감찰 과정에 자금출처에 대해 혹독하게 대검 중수부 조사를 받았다. 99년에도
조사를 했다. 그런데 더 조사할게 있나. 두 분이 그 정도 살 능력도 있고, 회사를 둘 다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 청문회 이후라도 김재정, 이상은씨가 해명을 안 한다면 실소유주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대금 출처에 대해 밝힐 용의가 없나.
"내가 밝힐 이유는 없고, 이를 그들에게 전달하겠다. 한 분은 70대 중반이고, 한 분은 60대다. 그들도 각자의 삶이 있다.
1985년도에 무엇 때문에 내 땅 사는데 남의 이름으로 하는가. 그곳이 개발지역도 아니고 회사로부터 의심 받을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 이름으로 살 이유가 없다. 지금처럼 정치인도 아니었고 당시는 그저 정신없이 살았다. 남의 이름으로 할 필요가 없다. 두
사람 자금 출처는 협조 필요하다면 이 같은 뜻을 전하겠지만 이 일은 나와 관계없다."
- 포스코 땅 매각은 김재정, 이상은씨가 공동명의다. 매각대금은 김재정씨 계좌로 송금된 다음에
이상은씨에게 80억원만 송금됐다. 두 사람이 투자한 비율이 53대 47인데 매도직후 매각대금 배분은 68대 32다. 5년 지난
후인 2001년 2월 김재정씨가 이상은씨에게 추가로 돈을 줘서 52대 48로 맞춰진다. 이런 사실은 두 사람간에 자금의 구분을
명확하 힐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이 주인이라는 의혹이 있다. 그게 이 후보가 아닌가.
"내 땅이면 얼마나 좋겠나. 큰 재산인데. 김만제씨 얘기 나왔는데 1999년도에도 김만제씨는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영삼 정권에서 회장하다가 김대중 정부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 땅에 대해 의혹이 있지 않겠나 해서 조사 받았다.
요즘 정치권에서 이명박 후보가 김만제 회장에게 '그 땅을 사달라'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전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정치지만 근거 있는 거 말해야 되는데. 김만제씨한테 직접 들었다고 한다. 김만제는 박근혜 캠프 고문이다. 그러나
그 분이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한다. 그분들이 없는 말을 왜 하는가. 사실이라면 김만제씨가 직접 이야기하지 왜 없는 말을
하나. 검찰 조사에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확실히 나와 있다. 검찰 조사 이상의 상식으로 그런 걸 가지고 이명박 후보의
땅이 아니냐고 말한다면 참 저도 답변하기 힘들다."
- 이 후보는 검찰 조사 결과 혐의가 없다고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자금이 김재정,
이상은에게 들어간 이후에 그 돈이 계속 두 분 앞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돈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상은, 김재정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검토 했는데 둘 모두 계좌가 거주지와는 거리가 먼 이 후보 부동산이 있는 서초동
법조단지 주변 지점에 개설돼 있다. 또 보험회사의 예금, 양도세 납부, BBK 공동투자 등 대부분 두 사람이 동일한 일자에
자금을 집행했다. 이는 둘의 자금이 한 사람에 의해 관리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안이다. 김재정씨는 또 9회에 걸쳐 19억을
대출받았다 상환했다. 거액의 여유자금 있는 사람이 그 돈을 빌렸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는 도곡동 토지가 이 후보 거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
"돈이 나한테 한번도 안왔다. 만일 돈이 나한테 들어왔으면 의심을 안 할 것인가. 그 돈이 내 돈이면, 돈 좀 있으면 그 돈으로
선거 몇 번 치렀다. 그러나 한 푼도 안 썼다. 또 왜 이 돈이 서초동 지점에서 거래가 됐냐는 것과 관련해선 서초동에 다스의
서울 지사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직원들이 있는 곳에서 금융거래를 한 것이다. 왜 돈이 있으냐 대출했느냐와 관련해선 이분들이 땅을 사서 판 뒤 당장
자금관리가 안되니까 보험회사에 장기 예치했다. 19억원이 필요한데 이를 해약하면 장기예금 한 것이 손해를 본다."
- 263억원 중에서 양도세 등 여러 가지를 쓰고 보험회사에 유치한건 180억원 밖에 안 된다. 또 19억원을 한번에 빌린 게 아니고 9번에 걸쳐 빌린 것을 더한 것이다.
"김재정 사장이 매각 대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손해보고 낭비를 했다. 그래서 보험회사에 맡겼다."
- 98년도 감사원이 포철 경영관리실태 감사한 것을 아나.
"모른다."
- 당시 감사원은 도곡동 땅 사업의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알고 있나.
"모른다."
- 감사원은 도곡동 땅 매입 과정에 있던 실무자 한명과 직원 2명을 문책하라고 포스코에 통보했는데, 알고 있나.
"포스코 경영이니까 알 수 없다. 그 시점에 해외 있었다."
- 결국 포스코는 손실이 예상되는 사업을 이익이 남는 것처럼 부풀려 샀다. 이는 포스코 고위 관계자가 부탁을 받고 매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포스코 김만제 회장이 그 당시도 그렇지 않다고 했고 지금도 아니라고 했다. 김 회장이 검찰 조사과정에 매우 명확하게 이야기 했다."
- 도곡동 토지가 이 후보 소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검찰이 조사중이다. 만약에 어떤 과정으로라도 후보 재산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사건은 조사를 받는 것이 아니고 이 땅의 소유주인 김재정씨가 자신의 땅을 이명박 씨 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서
고발을 한 것이다. 왜 내가 벌어서 산 내 땅을 남의 땅이라고 하는가에 대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사람에게 책임지라며 고발을
한 것이다."
- 차명재산 의혹을 뜯어보면 정말 이상한 거래다."
"(김씨 의혹과 관련해) 월급쟁이가 돈이 얼마냐, 확인해보니 일년이면 30~40억을 했다 이렇게 얘기한다. 당시 그 돈이면 현재
300~400억 보다 더 많은 양이다. 그러면 부동산 7~8억 사는 거 정도는 살 수 있지 않겠냐 생각한다. 그리고 두 분(형과
처남)의 관계는 이미 다스라는 회사를 동업하고 있는 입장이라 특수한 관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증위에서 처남 김씨에게 다스를 설립하며 최초 설립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나 질의했더니 당시
현대건설 협력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자금력이 풍부하다고 답변했다. 김씨는 1985년 도곡동 땅을 구입할 당시 친지에게서
1억원을 빌렸다고 답했다. 그리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까지 팔았다고 했다. 그런데 2년 만에 다스를 설립하면서 3억9600만원을
투자한다. 그리고 1년 뒤에 2억6400만원을 또 투자했다. 불과 3년 만에 6억6000만 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20년 전,
3년 만에 6억60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마련하는 게 가능했겠냐는 의문이 생긴다.)
- 다스 동업자인 큰형 상은씨와 처남 김씨는 16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우리 정서로는 사돈끼리 동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 후보와 김씨, 이 후보와 형님 상은씨, 그리고 상은씨와 김씨 중 어느 쪽이 가장 사이가 좋나?
"척도가 없다. 형과 김씨는 업종이 같아 사업차 출입하는 곳이 같았다. 거의 만날 만나는 사이였다. 하청을 하며 같은 사업장에
다녀 자주 만나는 관계다. 김씨는 형 상은씨와 비슷한 연세의 형님이 공직에 있다 돌아가셨다. 또 둘은 성격이 비슷하다. 김씨가
상은씨를 형으로 대해서 두 사람이 어울려 다녔다. 10년 이상 출입처 같이 다닌 데다 김씨가 형 상은씨를 잘 따른다. 김씨
형님이 돌아가신 데 김씨가 충격을 받은 것도 있고. 사실 나보다는 사실 두 사람이 더 친한 사이다. 나하고는 서먹서먹한 사이다."
- 다스의 김성우 사장(공동대표)은 다스에 지분이 없나?
"잘 모르겠다."
- 김성우씨는 이 후보가 현대건설에 다닐 때 데리고 있었던 부하직원 아닌가?
"현대 출신이다. 그러나 서로 알 수 있는 연배가 아니다. 아마 내가 사장이 됐을 때 입사 했을 것이다. 처남 김씨와 서로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성우씨가 다스의 사장을 하고 있는 이유도 모르는가?
“처남 김씨와 친해서 같이 일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 처남 김씨가 최대주주(49% 보유)라는 것은 알고 있나?
"최대 주주인지는 모르고, 동업하는 것만 알고 있나"
- 그런데 김씨는 이익배당을 받은 게 93년에 7920만원, 94년 6300만원을 받았다. 그
뒤 지금까지 이익배당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또 2006년 6월까지 비상근 감사로 일하면서 단 한 푼의 급여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다스의 최대 주주이면서도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를 볼 때, 다스의
실제 주주가 처남 김씨가 아니라고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나?
"배당을 받지 않았다, 급여를 받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돼 확인을 해 봤다. 형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다스와 합작회사인) 일본 후지기코 외국회사가 기술 로열티를 받아가는 데다가 배당까지 해달라고 했다 한다.
그러면 일본 기업에게 너무 특혜를 주는 게 아니냐, 그런 얘기가 나와 배당하지 말자고 두 주주가 결정했다 한다. 그러니 후지기코
측도 배당을 받지 않아 불만은 있지만, 두 주주의 결정에 따라 배당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를 두고 경영상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스가 합작회사에 투자원금보다 훨씬 많은 로열티를 줬는데 여기에 배당까지 해 달라니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다스가 만약 내(이 후보) 회사면 두 사람(이상은-김재정)이 악착같이 월급을 탔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김씨는 다스가
자기 회사니깐 이를 키울 생각으로 배당을 받지 않았다. 김씨는 다스 주주지만 자기 회사를 경영했는데, 1992년에 그 회사를
그만두면서 1993년부터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다스의 실제 주인이 나라면 형이든 김씨든 열심히 해 월급을 받고 빼가고 했을
것이다. 김씨와 형이 다스가 자기 회사가 아니라면 그런 애정을 가질 수 있겠느냐.
다스 설립 당시 이야기다. 1980년 후반, 현대차가 처음 부품의 국산화를 하게 됐을 때 그 당시 차 전망이 밝지 않았다.
적자를 볼 전도다. 현대자동차에 투자 할 사람 없으니 현대 측에서 전 임원에게 투자를 권유하더라. 이에 형 상은씨가 현대자동차와
접촉하고 일본 회사와 함께 합작하겠다고 제안하니 (부품회사로) 확정이 된 듯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세영 회장을 찾아가
'형님이 나와 관련된 납품회사를 한다는 것이 맞지 않다, 반대한다'고 했더니 정 회장이 '관여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이야기를 드렸더니 '현대차가 그런 입장이니 회사 결정에 따르라'고 했다. 그리고 공장을 지을 때
정 회장이 나를 부르더니 '현대건설이 지어주지 그랬냐'고 했다. 현대자동차와 거래를 계속 할 텐데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그리고 내가 회사 설립 초기에 두어 번 찾아갔다. 형을 만난 뒤 '만일 이 회사가 나쁜 부품을 납품해 모 기업 운영이
어려워지면 나도 곤란하다, 최선을 다 해달라'고 부탁했다."
- 형 상은씨가 다스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처남 김씨는 구체적으로 회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다. 김씨는 비상근 감사로서 회사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출근했다고 답변했다. 김씨는 다스에 어떻게
기여를 했나?
"김씨가 주주로서 중요한 일을 일방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거래하는 것이다. 회사 경영을 여러 사람이 할 수
없다. 형이 회사 운영을 맡아 하겠다고 두 사람 사이에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두 주주가 함께 경영에 참여하면 직원들도 일하기
힘들고, 효율적인 업무를 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경영을 형이 맡지 않았나 생각한다."
- 처남 김씨는 95년 8월에 그가 소유한 주식 6만6000주 중 2만6400주를 주당
1만원에 상은씨에게 양도한다. 그런데 주식 거래 1년 전인 94년 12월 말 현재 한 주당 자산가치가 약 3만원 정도로
평가됐다. 3만원짜리 주식을 1만원에 팔았다는 것이다. 6~7년 전의 주식값을 받고 양도하는 게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가
가능하나?
"회사를 운영한 경험상 창업할 때 서로 약속을 했을 것이다. 또는 합작회사인 후지키코가 철수할 때를 대비해 주식거래를 과소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98년 2월 의원직을 사퇴한 이후에 다스 주주회의에 참석했다는 주장이 있다.
"설립 당시에는 회사가 잘 될까 염려돼 가봤다. 그런데 이후에는 가봤자 환영도 못받았다. 당시 갈 필요도 없고 가지도 않았다."
- 다스가 BBK에 190억 투자하도록 권유한 적이 있는가?
"직접 권유한 일은 없다. BBK 회사 특성 상 영업은 철저하게 맨투맨 식 영업을 했다. 아마 김 사장이 다스를 찾아가 상품에
대한 설명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 김 사장에 대한 좋은 보도가 많이 나올 시기다. 삼성그룹이 BBK 창업 당시
큰 돈을 맡길 정도다. 다스에서도 내가 함께 일하지, 삼성도 돈 맡기지 하는 걸 보면서 '맡길 만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간접적인 영향은 줬을 것이다."
- 다스는 김 사장을 믿겠나, 전문 경영인을 믿겠나? 과연 다스가 190억을 김 사장을 보고 맡겼겠나?
"기업은 철저한 계산을 한다. 다스가 삼성이 투자했다는 사실에 BBK에 대한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다스 측이 김 사장과 수차례 만나 계산을 해본 뒤 선택을 했을 것이다."
- 다스에서는 여유자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다스가 BBK에 투자해
140억원을 손해 봤다. 그런데 2002년에 이자를 주면서까지 160억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여유자금이 있었다면 굳이 돈을
빌릴 필요가 있었을까? 결국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 것은 누군가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다스가 BBK에 한번에 다 투자한 것은 아니고 나누어 투자했다고 들었다. 기업이 투자를 하는 데에는 정상적인 경영을 하기 위한
안전성을 먼저 생각한다. 거래처가 어딘가, 사전 조사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김 사장과 동업을 한다고 하니 그것도 하나의
신뢰감을 조성하는 이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보고 돈을 맡겼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