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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17 "한국인 일 소녀 강간 교재"에서 보는 언론의 이중성
언제나 그렇지만 자신들의 기사나 사설, 칼럼에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증명해보이는 군요...

아래와 같이 소개글도 멋지게 써주고...
오늘은 선정적인 제목으로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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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오늘 기사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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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日소녀가 본 日패망 풍경 2005/05/09
[조선일보] 열두살 日소녀가 겪은 전쟁 2005/05/07
[동아일보] 열두살 日소녀가 본 조선과 일본 2005/05/07

열두살 日소녀가 겪은 전쟁
조선일보 | 김성현 기자 | 2005.05.07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정부의 관리를 지냈던 아버지를 따라 함경북도 나남에 살던 12세의 일본 소녀가 해방 전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며 겪은 고난을 담은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한국인이라면 결코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주 인공은 말한다. “언니는 다친 군인들 몸에 손이 닿아도 무섭지 않아?” “무섭기는. 다들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이잖니.” 여기서 ‘군인’은 일본군이며, ‘우리나라’는 일본을 뜻한다. 고국으로 돌아가며 일본인들은 이렇게 대화하기도 한다. “조선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뒤로는 편안하게 잠들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해방 후 며칠이나 괴롭혔다고 35년의 추악함을 잊는지.


중국에서 이 소설이 출판되지 못한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국적(國籍)을 잠시만 잊는다면, 전쟁이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고난에 빠뜨리는지 담담하게 묘사한 성장소설로 읽힌다.

열두살 日소녀가 본 조선과 일본
동아일보 | 권기태 기자 | 2005.05.07
열두 살 일본 소녀 가와시마 요코가 군국주의 일본의 패망을 알게 된 것은 함경북도 청진시의 나남에서였다. 미군의 공습으로 도쿄가 잿더미가 되어가던 1945년 7월 29일 새벽 나남에서 요코와 어머니, 언니는 “러시아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허겁지겁 짐을 꾸려 무작정 서울 가는 길로 나선다. 만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와 수십 리 떨어진 병기창에서 병역 삼아 일하던 오빠는 합류하지도 못한 채였다.


바 로 이 장면부터 시작하는 ‘요코 이야기’는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 여성 작가 가와시마 요코가 직접 쓴 것이다. 1986년 미국에서 발표돼 그해 뉴욕타임스와 미국의 대표적 도서 잡지인 퍼블리셔스 위클리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작가인 요코 본인이 실제 일제 패망 직후 가족과 함께 겪은 ‘피란 체험’을 고스란히 옮겨 놓아 ‘전후 대란(大亂)’의 묘사가 살아 숨쉰다는 게 특징이다. 지금껏 제대로 문학 작품으로 다뤄지지 않은 패망한 일본 국민의 심경과 조선인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휴머니즘도 비친다.


요코의 오빠가 “자원입대하기로 했다”고 밝히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진주만을 공격한 건 하나도 잘한 짓이 아니야. 전쟁은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걸 빼앗아가고 있어. 남편이나 아들을 잃느니, 차라리 우리나라가 지는 걸 보는 게 낫다.”


전쟁 물자 징발에 나선 일본 경찰이 조선에 사는 자국민에 행하는 폭행과 거만함, 운송 중 숨진 아기를 차창 밖으로 버려야 할 정도로 참담하기 그지없는 일본인 피란 열차, 앞가림에 나선 일본인들끼리 서로 속이려 드는 모습, 천신만고 끝에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 눈앞에 펼쳐지는 폐허의 풍경은 평화로운 삶을 원했던 작은 소녀 가족에게 쓰라린 기억을 안겨준다.


조선인을 지켜본 이들 가족의 기억은 두 가지다. 감정에 복받쳐 어떻게든 보복하려는 분한 얼굴들이 있는가 하면, 만신창이가 돼 쓰러진 요코의 오빠를 일본인이라고 내치지 않고 보살펴주는 어질고 착한 손길도 있다. 실제 작가의 오빠는 조선인 농부 가족에 의해 구원받아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작가의 아버지는 조선인에 대한 창씨개명은 잘못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1942년 일본으로 소환돼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그려낸 것은, 자기 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냘픈 소녀가 가족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 속에 폐허 속의 민들레처럼 자라나는 과정이다. 어머니와 언니에 대한 이 같은 사랑은 곧 국경을 넘어선 자매애(愛)와 인류애로 커다랗게 꽃피는 씨앗이 된다.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여성 번역가 윤현주 씨는 미국 보스턴에서 몇 해 전 할머니가 된 요코를 만나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자 요코가 단박에 자신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에서 왔군요. 제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나라에서요.” 원제는 ‘So Far from The Bamboo Grove’(1986년).




동아일보의 저자와 역자 대담기사

요코이야기’日저자와 韓 번역가‘전쟁을 말하다’  


‘요코이야기’ 日 저자와 韓 번역가 ‘전쟁을 말하다’

사진- ‘요코 이야기’의 저자 요코 가와시마 잡킨스(오른쪽) 씨와 재미번역가 윤현주 씨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캇의 요코 씨 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윤현주 씨)  

《일제강점기에 함경북도 청진에 살던 일본인 소녀가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격변의 소용돌이를 뚫고 어머니 언니와 함께 일본으로 ‘피란’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 소설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대나무 숲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와).

1986년 미국서 출간됐을 때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올해의 책’으로 뽑았으며, 미국 중학 교과과정 필독서로 선정된 화제의 책이다. 국내에선 올 상반기 ‘요코 이야기’(문학동네)란 제목으로 뒤늦게 번역됐으나 초판이 소화된 데 그쳤다.

책의 저자는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일본 여성 요코 가와시마 잡킨스(72)씨. 자신의 체험담을 소설로 만든 이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본보는 요코 씨와 이 책을 번역한 재미 번역가 윤현주(42) 씨의 대담을 마련해, 60년 전 한국에서의 경험이 요코 씨의 삶에 미친 영향, 최근의 한일 관계에 대한 소회 등을 들어봤다. 대담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캇에 있는 요코 씨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윤현주=뒷마당에 대나무들이 참 좋군요. 책 제목도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였지요.

▽요코=나남(청진시를 흐르는 나북천의 남서쪽 지역)의 집 뒤 대숲이 생각나서 심었습니다. 거기 살 때가 제 일생에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지요.

▽윤=‘요코 이야기’는 얼마나 사실인가요?

▽요코=1945년 8월 당시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피란 나온 오빠가 쓰러지자 북한 지역의 김 씨 아저씨가 구해주는 내용이 나오지요. 김 씨 아저씨 가족 이름은 가명입니다. 책에서는 오빠가 이듬해 한국에서 빠져 나오지만, 실제는 3년 후지요. 이 점들만 빼면 모두 사실입니다.

▽윤=당시 경험을 소설 속에 모두 담았나요?

▽요코=히로시마에서 본 원자폭탄 피해자들 이야기는 도저히 쓸 수가 없더군요. 불에 탄 아기를 안고 물 좀 달라던 여인이 생각납니다. 아기 몸은 벌써 구더기 떼로 들끓고 있었지요. 끔찍했습니다. 저는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서 생긴 일들을 미국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일본도 제국주의를 통해 한국 중국 등에 큰 고통을 준 사실을 역사 교과서에서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일본계를 모두 수용소에 가뒀지만 최근 사과하고 위로금을 주었지요. 일본 정부가 자기 잘못에 대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사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피한 거지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요.

▽윤=‘요코 이야기’가 한국에서 출간되니까 아직 일본은 그런 사과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일본인들의 고생담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요코=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일 관계를 떠나 제가 소녀 시절 겪고 느낀 어려웠던 일들을 솔직히 써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국을 제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일본 정부와 군인들이었지요. 일본의 보통 사람들도 일본 군인들로부터 괴로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때는 군인들 세상이었지요. 하지만 평화는 정부나 군인들이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개개인이 서로 이해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윤=저도 일본 정부나 군부와 일본인 개인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읽으니 감동을 받았지요. 나남에 살던 때 한국인에 관한 기억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요코=그때 일본군은 훈련장으로 쓴다면서 한국 사람들 땅을 뺏었습니다. ‘요코 이야기’에 나오는 이 씨 아저씨의 논밭도 뺏었지요. 아버지는 위로 삼아 이 씨 아저씨네가 밭농사 짓는 걸 가르쳐 주는 대가로 매달 얼마씩 주셨지요. 우리가 일본으로 갈 때는 우리 땅과 집을 이 씨 아저씨한테 준다는 서류를 만들었습니다(반전(反戰) 입장이던 요코 씨의 아버지는 한때 일제에 의해 정치범으로 투옥됐던 적도 있다고 한다).

▽윤=꼭 60년 전의 일인데요. 지금 회상하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요코=저는 어린 시절에 뜻하지 않게 전쟁을 겪었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난장판에 힘없이 던져진 거지요. 세상을 끔찍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쁜 어른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빛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고요.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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