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뜬 남극 세종기지 폭행사건과 동영상


그리고, 해당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되다는 투의 메신저...
그리고 거기에 따라 올라온 주방장의 반박문...

일단 다 읽어보면 주방장의 반박문이 더 상식선에 맞다고 보입니다.
요리못하는 주방장을 보냈다는 것도 그렇고, 식재료도 상해서 태웠다는 것이 더 상식선이죠.

어쨌든 진실은 저 너머에...


메신저 대화 출처 : http://bit.ly/IFxgl



해당 주방장이 인터뷰한 것으로 보이는 2008년 글


http://cafe.naver.com/pkleon99 (피해자 까페)

세종기지 폭행사건 피해자입니다
전 원래 22차주방장이 상당히 불미스런일(이일은 극지연구소측에서
부모님이 위독하다는걸로 은폐되었습니다)로 귀국조치를 당한후
1월 11일날 16일날 비행기를 타고 세종기지에 올거냐 말거냐를 결정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Posted by isss :

오늘 사설입니다. 제목과 내용만 보면 정말 걱정되기도 합니다.

[사설] 시위대에 무릎 꿇고 무전기 뺏기고 코뼈…

이렇게 용산 참사 추모 문화제를 왜곡 시키기 위해 경찰과 수구 언론들의 노력이 대단합니다.

경찰이 행했던 폭력과 불법은 전혀 보도하지 않고, 그로 인해 발생했던 시위대의 폭력만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가져간지도 모를 신용카드를 마치 시위대가 썼다는 식으로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른 시위대의 폭행 장면이란 것도 한명의 여성이 신문지 뭉치로 다수의 경찰에게 휘둘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르고 골랐을 폭행 장면인데, 주변에 경찰이 더 많다는 것이 경찰의 다수에 의한 폭행과는 다른 것이기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먼저 방패로 찍었다는데, 이런 보도는 전혀 없습니다. 평화로운 경찰에 과격한 시위대가 덮친 것으로 묘사되는 군요. 아래 인터뷰 중 일부입니다.

폭행이야 당연히 경찰 쪽에서 먼저 했지요. 정말 말 그대로 평화롭게 행진을 하던 시민들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다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렇게 방패로 찍으면서 들어온답니까.

야간에 도로에서 행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을 때리면서 마구잡이로 끌고 가는 건 도를 넘은 행위라고 봐요. 경고방송도 미란다원칙 고지도 없이 무조건 ‘저 새끼들 잡아’였어요. 어제 경찰의 행동은 과잉 진압일뿐더러 위법한 직무집행이라고 생각해요.

[기자의 눈] 시민-경찰 폭력충돌 원인…사복경찰과 집시법

경찰은 진실을 왜곡하지 마라!

- 3월7일 밤 사건의 전말과 진실

어 제 용산 범대위는 100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추모문화제를 서울역에서 개최하였다. 그리고 8시30분경 추모행진 없이 모든 행사를 마쳤다. 그런데 문화제가 마무리된 저녁 8시40분 경, 사복체포조가 서울역 지하계단을 봉쇄하고 시민들 통행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사복차림으로 신분도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출입계단을 완전히 막아선 상황이었다. 문화제를 마치고 돌아가던 시민들과 이 과정에서 마찰이 생겼다. 사복을 착용하고 있었고 경찰의 적법한 직무집행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그 이후 일부 시민들이 동대문역에서 자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이미 경찰들은 동대문에서 시위를 예상했던 듯 경력을 배치해 놓은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도 시위대와 공방이 벌어졌다. 경찰은 평화적으로 행진을 하던 시민들을 가로막은 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10여명의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경고방송을 통해 시위대의 자진 해산을 유도해야 한다는 자신의 직무집행 원칙마저 어겼다.

한 편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이 신용카드를 분실했고 누군가 그 신용카드로 옷, 담배 등을 구입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사람이 시위대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카더라 식’ 왜곡 보도다. 촛불추모제와 범대위를 도덕적으로 흠결 있는 집단으로 매도하려는 경찰의 전형적인 사기행각이다. 그 사람은 행진에 참여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시각 다른 사람들은 종로방면으로 행진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시위는커녕 다른 장소에서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 령 이 사람이 시위를 하러 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사건은 신용카드 절도사건일 뿐, 시위와 무관한 사건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일을 시위대의 소행으로 몰아가고 있고 시위대를 도덕적으로 매도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지난 설날 연휴기간 용산현장에서 발생한 전경차량 방화사건도 마찬가지다. 차량방화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경찰은 전철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소행이라고 발표하여 아무 근거도 없이 전철연을 매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 찰은 이번 사건을 동대문에서 일어난 경찰폭행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건의 전말을 왜곡하는 일이다. 사복형사들이 무단으로 계단을 봉쇄하여 시민들의 통행을 막아섰고 평화시위 과정에서 10여명의 시민들도 경찰의 폭행으로 다쳤다. 또한 어젯밤 10시경 시청옆 국가인권위 건물 앞에서 칼라TV, 누리꾼TV, 사자후TV 등 동영상 생중계를 하던 언론팀들이 아무 이유없이 30여분 동안 경찰에 의해 감금되었다. 그리고 영상카메라가 경찰에 의해 파손되었고 촬영을 하던 카메라 기자가 경찰에 의해 폭행당했다. 이와 같은 경찰의 무단적, 폭력적 행위가 당일 밤에 지속적으로 발생되었다.

어 젯밤 일들은 경찰이 시민들의 통행권을 막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원천봉쇄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근본적으로 경찰이 용산 살인진압에 대한 추호의 반성의 빛도 없이 용산 살인진압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범대위의 행사를 불법시하고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원천봉쇄한데서 발생한 일이다. 경찰이 어떠한 반성도 없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막기만 한다면 어제와 같은 일들이 반복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2009.3.8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거리 행진 참가자들의 증언>>

* 3월 7일 범대위가 주최한 촛불추모문화제가 마무리된 이후, 거리 행진을 하던 시민들이 경찰 십수 명을 일방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많은 언론이 경찰 측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보도하면서 사실관계가 심각히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하여, 범대위는 수소문 끝에 어제 거리 행진에 참여했던 시민 몇 명과 전화로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경찰 측이 자신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장소에 있었던 시민들의 증언이다.

1. 김모씨(남, 43세)의 증언

김씨는 3월 7일(토) 저녁 8시 40분경, 서울역에서 진행된 추모문화제를 마치고 전철을 타고 집에 가려던 중이었다.

-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전 철역 플랫폼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검은 색 점퍼를 입은 건장한 남성 수십 명이 계단을 완전 봉쇄하고 있었어요. 이 계단은 서울역 광장에서 플랫폼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어서 전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수십 명의 남성들이 그 어떤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통행을 아예 가로막았습니다.

- 그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전 철을 이용하려던 시민들이 ‘왜 길을 가로막는 거냐?’고 물었지만 남성들은 묵묵부답이었어요. 오히려 험상궂은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려던 시민들을 밀쳤습니다. 시민들이 화가 나서 계속해서 따져 묻자, 몇몇이 ‘경찰이다’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사복을 입은 상태였고, 경찰관이라는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관등성명을 밝히지 않았고 길을 막는 이유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없었어요.

- 그래서 시민들이 경찰을 폭행했나요?

어 떤 사람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로 길을 막는데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당연히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남성들 사이에서 언성이 높아졌고, 잠깐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경찰들을 폭행했다거나 이런 일은 못 봤습니다.

-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정리됐나요?

몇 분의 실랑이 후에 그 사람들이 계단 위로 빠져나갔고, 통로가 열렸어요. 그래서 시민들은 전철 플랫폼으로 내려가서 전철을 탈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제야 집에 갈 수 있었어요.

2. 이모씨(여, 29세)의 증언

이씨는 3월 7일 저녁 9시 30분경, 동대문역에서 종로5가 방면으로 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 어제 행진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촛불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촛불시민들 중 일부가 동대문에서 평화 행진을 하려고 했어요. 시민들에게 이번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죠.

- 경찰 병력은 어디에 있었나요?

5분쯤 행진했나, 그런데 갑자기 종로 5가 방면에서 전경 100여명이 몰려와서 길을 가로막았어요. 그러더니 다짜고짜 방패로 시민들을 밀쳐내면서 마구잡이로 연행을 시도했어요. 그 흔한 경고방송도 없었고요...

-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저 희들은 도로 1-2개 차선을 이용해서 평화적으로 행진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경찰은 무조건 저희를 밀면서 거기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방패로 찍어댔어요. 제가 알기로 불법집회라 할지라도 경찰은 경고방송을 해서 자발적인 해산을 유도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어제 상황은 그게 아니었어요.

- 경찰은 시민들이 자신들을 폭행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행 진 참가자들이 한 200명쯤 된 것 같은데요. 전경 100명 정도가 저희를 가로막은 뒤 한 5분쯤 지나서 사복체포조 100여명이 왔어요. 경찰과 시민들의 숫자가 엇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경찰 말대로 시위대가 경찰들을 에워쌀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사복체포조가 왔을 때는 이미 행진을 하던 사람 모두 인도로 올라가서 해산하던 중이었는데, 사복 체포조들이 인도에 올라가 있던 시민들마저 연행하려고 했어요. 저도 여성이지만 여성 참가자들이 꽤 많았는데, 그러지 말라고 항의해도 막무가내로 때렸어요. 그 과정에서 10명도 넘는 시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 같아요. 경찰이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연행하려 하니까 사람들이 잡혀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몸싸움이에요. 그걸 그렇게 얘기하니 어이가 없네요.

3. 박모씨(남, 30세)의 증언

박씨는 어제 영등포역 방향으로 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 어제 행진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이 80명쯤 됐어요. 10시 반쯤 됐을까요. 영등포역 방향으로 행진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숫자도 얼마 안 되고 시간도 늦어서 곧 행진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어요. 길 건너편에서 전경 50여명도 따라오고 있었고요.

- 경찰이 가로막지는 않았나요?

아 뇨. 처음에는 경찰도 우리를 가로막거나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등포시장 부근에 이르자 앞에서 갑자기 경찰이 튀어나왔어요. 나중에 안 거지만 영등포시장 부근에 경찰이 이미 많이 배치돼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경찰들이 갑자기 방패를 휘두르면서 행진 대열 앞을 치고 들어오면서 ‘저 새끼 잡아’ 그러더라고요.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평 화적으로 거리를 행진하는데 경찰이 막 치고 들어오니까 당황했지요. 인도로 쫓겨 올라가서 골목으로 빠져 도망치려고 하는데,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잡혀가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몇몇 시민들이 ‘왜 잡아가느냐?’며 항의를 했는데, 이 사람들마저 방패로 찍으면서 연행을 하더군요. 이 과정에서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방패에 찍혀서 많이 다쳤어요.

- 행진 참가자들이 경찰을 폭행했다던데 사실인가요?

폭행이야 당연히 경찰 쪽에서 먼저 했지요. 정말 말 그대로 평화롭게 행진을 하던 시민들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다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렇게 방패로 찍으면서 들어온답니까.

-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는 말씀인가요?

야 간에 도로에서 행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을 때리면서 마구잡이로 끌고 가는 건 도를 넘은 행위라고 봐요. 경고방송도 미란다원칙 고지도 없이 무조건 ‘저 새끼들 잡아’였어요. 어제 경찰의 행동은 과잉 진압일뿐더러 위법한 직무집행이라고 생각해요.

Posted by isss :

실랑이 수준은 폭행으로 표현하면서 왜 전경들의 끊임없는 시민들을 향한 도발과 폭행은 보도하지 않는 것일까? 전경에 대한 폭행보다 몇 배는 더 시민들을 향해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데, 국가 권력의 폭력에는 순응하는 언론이 과연 제대로된 언론일까?

왜 당당하게 조선일보 기자임을 밝히지 못할까? 아니 하다못해 PRESS 완장을 차지도 않고 시민들 사이에서 몰래 찍고 있었을까? 자신도 조선일보가 왜곡을 일삼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거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일까? 그리고 그런 보도에 대해 나는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몇몇은 우발적으로 폭행을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왜 그를 둘러싸고 보호해준 수십명의 사람은 무시하고 마치 모든 사람이 폭행에 가담한듯한 기사를 써댈까?

경찰을 향한 순식간의 도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까?

본사 주완중 사진기자 시위대에 폭행당해

'비겁한 취재'하던 <조선> 기자, 경찰 병력 향해 도주

(박형준님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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