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새 앨범이 2차 세계 대전 일제의 전투기 이미지를 사용해서 논란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밀리터리 분위기에 약간 일본풍인데다 사용한 전투기 이미지 마저 일본 제국의 전투기라니요.

해당 전투기는 나중에는 가미가제 자살공격기로도 사용된 전투기입니다.

전투기 이미지는 디자이너가 별 생각없이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 다시 고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욱일승천기와 비슷한 이미지들도 고쳐졌으면 좋겠네요.

소녀시대 신곡 "소원을 빌어봐" 기다리고 있지만... 아닌건 아니지요...

그러고보니 컴백일은 6월 25일이군요. 밀리터리 복장에 6.25 에 컴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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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제로센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미쓰비시 A6M 영식 함상 전투기 (零式艦上戦闘機)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된 일본 제국 해군 항공대의 경량급 전투기이다. A6M이라는 제식 번호는 전투기를 의미하는 A, 6번째 모델을 의미하는 6, 미쓰비시에서 생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M이 결합된 것이다. A6M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게서는 주로 제로라고 불렸다.

A6M이 도입될 당시, A6M은 세계 최고의 함재기였고 연합군 조종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1][2][3] 1942년 새로운 전술과 기술이 개발되면서 연합군 조종사는 같은 조건에서 A6M 영식 함상 전투기와 교전할 수 있게 되었고, 1943년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 제조사들은 제로보다 더 우수한 화력, 장갑, 속력, 기동성을 가진 전투기를 제작하였다. 미쓰비시 A6M은 1944년에는 구식이 되었지만 생산은 계속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엽에, 제로는 가미카제 작전에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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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뮤니티에서 퍼온 글입니다.(출처 : dvdprime) 너무 잘 정리해주신 글이라 퍼옵니다. 글 쓰신 분이 마음대로 퍼가셔도 된다고 하셨네요.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고 문제점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기 아래 저자들은 지금 서울시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근현대사 특강에도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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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에서 집필하고 일부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작 어떤 책인지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15000원이나 하는 책을 제 돈으로 사기는 아깝고(돈이 썩어나도 안사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했지요. 동네 도서관에는 없고, 모교 대학도서관에는 있더군요.
아직 학생인 후배에게 부탁했는데 의외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 예약이 차 있어서
그동안 빌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오늘 예약순번이 되어서 책을 빌릴 수 있다는 후배의 연락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 들러서 책을 빌려왔습니다.



바로 이 책입지요....올 컬러에 제본 상태는 꽤 좋더군요...
(하긴 15000원이나 하니까요.)

우선 이 책을 보고서 크게 놀랐습니다.
집필진에 역사 전공이 없는 겁니다. 한국사 전공은 관두고라도 세계사나 동양사 등,

역사관련 전공자가 없다는 겁니다.


이영훈(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재호(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김용직(성신여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주익종(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일영(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호(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광동(나라정책연구원 원장)
김세중(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김종석(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전상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박효종(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김영환(시대정신 편집위원)
위 사람들이 집필진인데, 전부 경제아니면 정치외교학... 집필진 부터 무서워집니다.


집에 오는 차에서 대충 내용들을 훑어 봤습니다.
처음부터 뒷목이 뻣뻣해 오는 책이었지만... 분노를 가라 앉히면서,
우선 종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나부터 살펴보았습니다.


한편 일본군은 한국, 만주,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에 이르는 전 주둔지에서 군 시설의 일부로 위안소를 설치하였다. 그곳에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출시느이 여인들이 위안부로 노예처럼 수용되어 일본군에 성적 위안을 제공하였다. 일본군은 노예제를 금한 국제 협약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92~93쪽)


교과서적인 서술은 이게 다입니다. -_-;;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는 소리도 없고, 종군 위안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행위였는지에 대한 서술도 없습니다. 노예제를 금한 국제 협약을 위반하는 범죄 라는 말로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같은 쪽에 "미얀마 전선에서 미군의 포로가 된 한국 여성 위안부들"이라는 사진이 실려있고,
거기에 설명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 여성이 위안부가 된 사정에 관해 당시 심문을 맡았던 미국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1942년 5월 상순 일본인 대리업자가 '위안봉사'를 시킬 한국인 여성을 모집할 목적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 대리업자가 여인들에게 제시한 것은 큰 돈벌이, 가족의 빚 갚기, 쉬운 일, 신천지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삶 등이었다. 이러한 꾐에 빠져 많은 여성이 해외 취업에 지원하고, 몇 백 엔의 전대금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무지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었다. 대개 800여 명이 이렇게 모집되어 1942년 8월 20일까지 랑군에 도착하였다."


어디에도 종군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에 대해 해외 취업을 한다는 꾐에 빠진 무지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자라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 시대를 조금 앞당겨 한일 합방이 있던 시대로 돌아가 볼까요?


1907년 7월에 일어난 헤이그 밀사사건은 대한제국을 명목으로나마 유지해 두려는 이토 통감을 비롯한 온건파의 입장을 약화시켰다..... 이후 통감을 사퇴한 이토는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동양 평화의 대의를 저버린 죄를 묻는 안중근에게 피살되었다. 이후 병합론은 더욱 강화되어....(76쪽)

뭔가 아리송하다면,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인물 설명을 봅니다.

일본 메이지시대 정치가, 메이지유신 후 영어에 능하여 외교 업무에 종사하였다. 1870년 화폐제도, 은행제도를 조사하러 미국에 파견되었으며, 1881년에는 헌법 조사를 위해 유럽을 방문하였다. 1885년 초대 총리대신에 취임했으며, 일본 헌법의 제정을 주도하였다. 1906년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였다.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두자는 입장에 서서 양국의 병햡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1909년 통감 사임 후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저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그들의 눈에 이토히로부미는 이런 사람이군요...

이번엔 좀 건너 뛰어서 1971년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1971년 4월에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박정희는 야당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였다..... 박정희의 개발정책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에따른 부작용과 반발도 적지 않았다...... 상당수의 농민이 농촌을 떠나 도시 빈민층을 형성하였다. 그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보기에 부패한 정치가와 소수 대기업에 대한 정치적 불만이 광범하게 축적되었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의 승리였지만, 선거 과정은 김대중이 박정희를 무섭게 추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은.... 후진국에서 성곡해 본 적이 없는 실험적인 주장이었다. ... 그의 4대국 안전보장론은 동서냉전이 치열했던 당시의 국제 정세에서 현실성이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정책은 급속한 경제발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도시 서민층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 정치에서 처음으로 포퓰리즘(populism)이 위력을 떨친 선거였다.(
200쪽)


김대중 전대통령은 1971년에 이미 포퓰리즘 정치를 했군요. 김대중 후보가 말도 안되는 공약을 내세워서 포퓰리즘을 폈지만 결국 박정희가 승리했다는 내용되겠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은 일제시대를 비롯해서 많은 부분에서 사실에 대한 해석을 넣지 않습니다.
위에 일본군 위안부를 예로 든 부분을 보시거나 안중근 의사의 인물 설명에도 일절 가치 평가는 없습니다. 그런데 박정희의 업적을 치하하거나, 이승만의 업적을 치하할 때는 이렇게 가치평가적인 내용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여기서는 김대중 후보의 주장에 대해서 실험적인 주장이라니, 현실성이 의심스럽다니 하는 말과 함께 포퓰리즘이라는 말도 씁니다. 포퓰리즘은 박정희가 쓴거 아닌가요? 후훗...

다음 페이지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독일로 나간 한국인 간호사들 - 1963년부터 한국은 독일(당시 서독)에 간호사와 공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후 12년간 간호사 1만 명 이상, 광부 약 8000명이 서독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1964년 12월 서독 방문 길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가 한국인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로 방문한 자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온 간호사들


이 책의 어디서도 저런 표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문학서적을 기술하는 내용에도 저런 말은 안나오는데 저기엔 저런 표현을 쓰더군요.

이승만을 찬양하는 곳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게 만듭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후진국의 정치적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처럼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그의 반공주의는 보통사람의 의식속에서 두려움으로 내면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후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올바로 잡는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158쪽)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승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군요. 그럼 소련군과 미국군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거군요. 아, 물론 이 책에는 이승만이 한강다리 끊고 도망간 것에 대해서는 단 한줄의 서술도 없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내용은 워낙 포괄적으로 포장을 해 놔서 한 군데를 집어서 비판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충 훑어보던 중 10월 유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옮겨봅니다.


유신헌법이 허용한 대통령의 절대 권력과 종신 집권의 가능성은 박정희가 개인적 권력욕에서 10월유신을 감행했다느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10월유신은 개인의 권력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커다란 변화를 한국인에게 안겨주었다.....
이처럼 한국을 둘러싼 군사안보와 국제 정세의 중대한 변화를 맞아 박정희는 자주국방 체제를 추구하였다.... 자주국방 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중화학공업의 발전이 필수적이었다......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장산업이 필요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1972년5월~9월에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할 의지를 다진 것으로 여러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한 배경에서 박정희는 5.16쿠데타에 이어 10월유신이라는 또 하나의 정변을 감행하였다.
(205~206쪽)



유신헌법은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을 수는 있지만, 국가의 경제를 변혁시킨 원동력이 되었다는 말로 마무리를 짓고 있군요. 대단합니다...

박정희에 대한 인물 설명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그는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 민족의 사대주의, 자주정신의 결여, 게으름, 명예심의 결여를 증오했으며 그 결과로 빚어진 민중의 고난과 가난에 근원적으로 분노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에 관해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서양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에 기초한 민주주의로서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같은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통치 방식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진한 개발 정책과 외교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그의 집권기에 경제는 고도 성장의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는 측근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다
.(186)


흠... 뭐라고 할 말이... 권위주의적 통치가 성장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했다라...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그리고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했다?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했다. 검소하게 아낀 돈으로 궁정동에 가셨나보군요.

게다가 이 교과서를 집필한 집필진들은 자신들이 말한 것도 뒤집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한국 정치가 민주화 시대를 맞아 포퓰리즘 경향을 드러내는 것은 다수 한국인이 공동체, 참여, 평등, 분배 등과 같은 집단적 가치에는 친숙하지만, 개인, 자립, 경쟁, 사유재산 등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성립할 때 그 기초에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기본 가치로 존중하는 자유주의의 발전이 먼저 있었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근대사의 출발과 함께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기 때문에 아직 국민생활 원리로 완전히 정착된 상태가 아니다. (247쪽)

한국에는 서양식이 맞지 않다면서, 여기서는 서양에서의 민주주의 발전 타령을 하고 있군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직 분배를 이야기하면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5.18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서는 더욱 놀라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광주 시민과 계엄군 사이의 충돌은 신군부가 유신체제를 사실상 존속시키고 부당하게 집권을 추구한 데 대한 국민의 저항으로서 민주화 운동이었다. 5.18광주민주화 운동의 발생에는 신군부가 체포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그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미국이 신군부의 계엄군 출동과 시위대에 진압을 묵인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그로 인해 그때까지 유신체제와 신군부에 저항한 민주화 세력은 점차 반미국 민족주의 세력으로 변해갔다.(220쪽)

교묘하게 지역색을 집어넣어서 5.18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광주민주화항쟁으로 명명된지가 언제인데 운동이라고 격하하고 있군요. 끝으로 가서는 민주화세력이 반미가 되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네요.

게다가 이 책에는 5.18 사진은 딱 한 장 실려있습니다. 어떤 사진일까요? 계엄군에게 팬티만 입은 채 맞는 시민의 사진? 아니면 어린 아이가 아버지 영정을 들고 있는 사진? 아닙니다. '광주 금남로에서 차량을 불태우며 계엄군과 대치 중인 시민들'이라는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계엄군은 보이지도 않고 불타는 차량 두 대와 시민들만 있는 사진이지요.


종교에 대한 편향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이런 부분이 있군요.

급속히 교세를 확장한 한국의 종교는 전반적으로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부, 건강, 자손의 번창을 추구하는 기복신앙의 특질을 강하게 띠었다. 그것은 각 종교의 교리와 의례가 전통무속신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70년대 이후 기독교와 천주교의 일부가 민주화운동과 노동, 농민, 빈민 운동에 참여하여 민주화와 인권개선에 기여하였다. (234쪽)

물론 이 부분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축소하려는 듯한 내용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근데 민주화운동과 노동, 농민, 빈민 운동엔 기독교 보다도 천주교가 더 많은 참여를 하지 않았나요?


저도 버스에서 잠깐 책을 펼쳐본 것이기에 정확하게 읽고 더 비판해야할 거에요.
이 책을 대충 훑어본 느낌은 똥이 싸지른 똥 이라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똥이라고 해서 그냥 피해갈 수는 없지요.
이 책을 읽고 잘못된 점을 찾아내서 꾸준히 비판하는 것만이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너스로 한국 주요 정당의 이합집산 이라는 재밌는 표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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