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아래 콘텐츠는 모두 KBS 기자협회 콘텐츠임을 밝힙니다.
이 콘텐츠를 제작한 KBS 기자들은
이 일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권에 완전히 장악된 KBS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하고 있는
KBS의 방송 '텔레반'들을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인규 씨는 도둑 취임식에서 ‘정치 권력으로부터 KBS의 독립을 지키러 왔다‘고 공언했습니다. 비록 잠시 정치활동을 했지만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언론인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믿는 일부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MB 특보를 한 것만으로도 분명한 결격이 되겠지만 한번 검증을 해 봅시다.

김인규 씨는 기자였고 본인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인규 씨는 KBS에서 정치부 통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정치부장과 보도국장, 센터장, 이사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지금부터 오늘의 김인규를 만든 당시 김인규 기자의 활약상을 보시겠습니다. 이 분이 KBS의 정치적 독립을 지킬 수 있을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면교사로 기자로서 방송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1987년 1월15일 민정당 창당 기념식


87년 1월 14일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새해 벽두부터 수많은 양심인사들이 각종 이적단체 혐의로 구속되고 시국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었다.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은 정권연장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이 와중에 1월 15일 민정당은 창당 기념식을 열었고 당시 민정당 출입기자였던 김인규 씨는 이를 보도했다.

리포트:

지난 6년 전 극심한 사회혼란과 정치적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출번한 민주정의당은 무엇보다 구정치질서의 청산과 개혁을 위해 새시대 새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새역사 창조에 나섰습니다. 민정당은 창당 때부터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당원들이 당비에 의해 당을 운영해 나가는 자립정당상을 우리나라 정당사상 처음으로 확립하고 구시대적 정치 병폐의 재현을 막기 위한 청렴정치에 앞장서 왔습니다. 특히 국민속의 정당을 목표로 민생 문제와 관련한 참신한 정책 개발에 주력해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와 국민연금제도 최저임금제 도입, 그리고 농어촌 종합대책 등 실제 국민 복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서 정책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굳히고 있습니다. 특히 민정당은 선진조국 창조에는 다른 분야에 비해 뒤져 있는 정치 선진화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아래 헌법 개정문제가 제기되자 날로 변화하는 사회 추세에 부응해서 권력의 분산과 국민의 정치 참여라는 두가지 측면에 역점을 둔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마련함으로써 이를 관철시켜야 하는 개헌 정국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세차례 선거를 통해 집권당의 위치를 다져온 민정당은 이제 88년에 평화적 정부이양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업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 합의 개헌을 통한 의원내각제 관철과 제13대 총선에서의 압승을 통한 정권재창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직면한 것입니다.



2> 1987년 4월13일 전두환 “호헌 선언”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일부 폭로되면서 민주화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4월 13일 전두환은 “개헌 논의를 유보하고 현행 헌법으로 정부 이양을 한다”는 내용의 ‘4.13 특별 선언’ 발표했다. 김인규 기자의 보도를 보자.


리포트:

전두환 대통령이 오늘 특별 담화를 통해 임기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른 정부 이양과 국력 소모적인 개헌 논의의 지양을 선언한 것은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내년의 양대 국가 대사를 차질없이 차질없이 치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헌법문제와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명백히 제시한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헌법 문제와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합의 개헌을 추구하면서 무작정 기다리던가 아니면 다수의 힘을 배경으로 일부 정치세력과의 합의만으로 개헌을 강행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현실 여건을 감안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이상 일단 국력소모적인 개헌논의를 지양하고 현행헌법에 따라서 안정속에 국가 대사를 실천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야당의 내분과 갈등으로 대화와 타협에 의한 합의 개헌 기대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대로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오히려 시간 낭비이며 책임 회피일 뿐 아니라 앞으로 열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우리 헌정사의 최초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여는 평화적 정부 이양에까지 차질을 빚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헌논의 출발의 당초 목적과는 달리 혼미한 현 정국의 원인이 되고 평화적 정부 이양에 장애가 되고 있는 국론 분열적이고 정쟁적인 개헌 논의 자체를 일단 뒤로 미뤄 정치적 파국을 막는 동시에 내년에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헌법문제의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는 통치적 차원의 결단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1987년 6월3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제청

군부 독재 정권은 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적인 요구를 희석시키기 위해 “평화적 정권 이양”이라는 해괴한 조어를 만들어 낸다. 김인규의 보도에서 당시 노태우의 대통령 후보 제청은 <우리 역사의 큰 전환점> <진정한 민주화 선진화> <헌정사의 새로운 이정표> <대통령의 외골 신앙> <소중한 정성> 등으로 묘사된다. 화가 나서 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선거보도의 공정성에 대해서 박사 논문을 쓰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하겠다는 게 지금 상황이다.




 

리포트:

오늘 민정당 대표위원이 중앙집행위원회의 제청으로 차기 대통령 후보 신청 등록까지 마친 것은 내년 초 평화적 정부 이양을 위한 일련의 정치일정 가운데 첫 단계 작업이 이행됐다는 점에서 분명히 우리 역사에 큰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헌정 40년에서 가장 부끄러웠고 우리 헌정사의 비원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직까지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평화적 정부 이양임에 틀림없습니다. 제1 공화국의 이승만 대통령이나 제3 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끝내는 1인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물리적인 힘에 의해 헌정 중단 사태를 되풀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집권자가 스스로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이같은 평화적 정부 이양을 경험하지 않는 한 우리 정치의 진정한 민주화와 선진화는 이뤄질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일부에서는 여야가 바뀌는 것 만이 평화적 정권교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국민이 선택하는 즉 선거의 결과에 따라야 하는 것이며 이보다도 우선 정부 이양이 없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는 현직 대통령 임기중에 집권여당이 차기 대통령 후보를 결정 제청한 그 자체가 우리 헌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설정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의 변함없는 단임의지와 평화적 정부 이양의 외골 신앙이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정부나 여당이 모두 말 한마디 절차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면서 조심스럽게 정부 이양을 위한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는 진지한 분위기 그 자체가 바로 진정한 민주정치를 해 보겠다는 소중한 정성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권 내에서 후계 후보를 선출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어제 저녁 청와대 상춘재에서 있은 후보 결정을 위한 합의 도출 과정이나 오늘 있을 중앙 집행위원회의 제청 등은 모두가 민주정치의 새 장을 열어나가는 좋은 선례가 될 것입니다.



4> 1987년 6월10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

6월 10일을 더 말해서 무엇하겠나. 하루 전 이한열이 최루탄에 피격돼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개최가 열리면서 6월 민주 대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그 날........김인규의 뉴스는 이렇다.




리포트:

오늘의 민정당 정당대회는 현직 대통령 임기 중에 집권당이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 낸 우리 헌정사상 처음있는 정치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는 단임 의지를 거듭 천명해 온 전두환 대통령의 약속이 확인되는 정치적 절차였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평화적 정부 이양의 전통을 세우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정치 발전의 결정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현실화되는 우리나라 정치 발전의 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민정당 정당대회는 단순한 정당행사가 아니라 우리 헌정사 40년에 새 장을 여는 획기적인 첫 걸음이라고 민정당은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정치사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평화적 정부 교체의 실현은 단순한 구호나 선동으로 이룩될 수 있는 쉬운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순탄치많은 않은 길을 민정당은 오늘 대회를 통해 확실하게 추진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야당 측에서는 이러한 정치일정의 취소를 요구하며 강경투쟁을 계속하고 있어 내년초의 목표 시점까지는 넘어야할 난관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수락 연설을 통해 대화의 필요성과 조화의 정치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노태우 대표위원이 평화적 정부 이양의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정국 안정과 정치 활성화라는 시대적 정치 과제를 원만히 풀어나갈 때 오늘 대회의 정치사적 의의와 역사적 의미는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시국수습방안발표

다들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다른 언론사에서 ‘김인규의 과거’를 보도한 것을 빼고도, 이동영상을 본 사람만 4만5천명이 넘는다. 기자협회 블로그에도 2천5백 명 이상이 방문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기여한 선거 특보 경력은 그저 가장 가까운 흠결에 불과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찾을 수 있는 것만 따져도 끝이 없다. 기자 8년차 본격적으로 정치부 기자 초에 입문한 뒤 김인규는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1,2편에서 봤듯이 민정당을 출입하면서 전두환을 미화하는 최전선에서 일하고, 6월 항쟁 이후에는 노태우로 대표되는 차기 정권 재창출에 전력한다.

-김인규에게 민정당 창당은 “구정치질서의 청산과 개혁을 위해 새시대 새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새역사 창조”하기 위한 사건이었다.
-김인규에게 전두환의 4.13 호헌선언은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는 통치적 차원의 결단”이었다.
-김인규에게 노태우 후보 선출은 “민주정치 발전의 결정적 전기”였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해진다. 87년 전두환은 결국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전국적인 6월 항쟁의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대통령 직선제와 일부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결정적 국면에서 김인규의 스탠스는 무엇이었을까.

오늘은 6.29선언 이후 김인규의 리포트를 감상해보면서 ‘진정한 달인의 면모’를 살펴보자.

6월24일 전두환이 사실상 대통령 직선제를 거부하면서 시위는 격화됐다. 26일 전국 150만 명이 동시 다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루 전국에서 3,467명이 연행됐고, 경찰서/파출소 31개가 불에 타거나 부서졌다. 결국 전두환은 국민에게 굴복했다. 전격적인 6.29 선언이 이뤄졌다.

김인규는 당시 6월29일 9시 뉴스에서 노태우의 6.29선언을 “어려운 국면에 처한 현 시국을 타개하겠다는 그러한 결연한 의지”,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정국수습에 관한 문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풀어나가겠다는 그러한 결심” 등으로 노태우의 개인적인 결단으로 규정한다.

이밖에 6.29 선언과 관련된 김인규의 여러 리포트가 있지만 가장 한심한 리포트 한 번 구경해 보자. 카메라샷, 선택된 어휘 등등 조선중앙TV가 위협을 받을 정도다. 아래는  7월1일 9시 뉴스이다.

 


 

리포트 :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오늘 오전 연희동 자택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시국수습안에 대한 특별담화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시청한 뒤 자신의 건의를 대통령이 전적으로 수용하고 뜻을 같이 해 준데 대해 무어라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대통령의 담화내용은 대통령의 애국충정과 민주발전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어 감명스러웠다고 밝혔습니다. 노태우 대표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특별 담화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일일이 메모하고 담화발표가 끝나자 상기된 표정으로 취재기자와 주위 사람에게 다함께 박수를 치자면서 오랜만에 활짝 웃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노대표는 이어 지난 29일 특별선언을 한 이후 처음으로 중앙당사에 도착했는데 중앙당직자와 소속의원 사무처 직원 등 200여 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자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 노대표는 당사 본관 1층에 있는 총무국을 빙 둘러선 당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자신은 그동안 당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이제 모두가 하나가 돼 최선을 다해 나가자고 격려한 뒤 대표위원실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밝혔습니다.


김인규: 노태우 대표위원은 또 이제는 야당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민이 원하는 열매를 하나하나 맺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어느 누구의 반대도 없이 그 열매를 맺어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기자가 아닌 부역자로 살아오면서 김인규가 학습한 내용은 뭘까. MB정권 창출에 공헌을 한 뒤 다시 KBS에 나타나 하려는 짓이 뭘까.
다음 편에서는 87년 대선 과정, 92년 3당 합당 과정 등에서 김인규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주> 뉴스 원본은 KBS 기자협회 블로그 http://kbsjournalist.tistory.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isss :

한국이 싫다고 해서 오늘 또 구설수에 오른 권상우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권상우 "어릴때부터 한국이 싫었다" 발언 '물의'

영화 잡지인 프리미어 3월호 실린 전문입니다. 아무래도 솔직한 성격과 조금 거침없는 발언이 아슬하기는 하지만 전체 분위기와 상관없이 한 부분만 뽑아서 기사를 썼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기사에 당했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도 제대로 못 먹게 해서 미안하다. 짬뽕을 서서 먹더라.
소화가 잘 안 돼서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어서 그랬다. 위 기능이 원래 약하다.

성격이 급한 모양이다.
아주 많이 급하지.

낯을 가리나?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런 편인 거 같다. 의외로. 처음엔 눈도 잘 못 마주치지. 말하는 건 좋아하는데.

달변인 건 잘 알고 있다.
사람들하고 말하는 게 좋다. 이렇게 앉아서.

당신을 <화산고> 때 처음 봤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때 사자성어 갖고 장난치던 것도 봤다.
난 그 때만 해도 영화는 만들면 무조건 400만은 되는 건 줄 알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할 땐 잘 됐는데.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흥행이 걱정되나 보다.
<숙명>도 안 됐잖아. 송승헌하고 권상우하고 나왔는데 100만도 안 들었으니까 쪽 팔리지.

<야수>도 별로 아니었나?
그래도 100만은 넘었으니까. 이번에 한 편 안 되면 이젠 다들 권상우가 갔네 어쩌네 그럴 거 아닌가.

<숙명> 때 김해곤 감독이 그랬는데. 흥행 안 되면 배우들하고...
응. 다음에 다신 보지 말자고. 그래서 연락 안 하잖아. 농담이고. 난 그래도 가끔 전화 드리고 그런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왜 선택했을지 의아했다. 그런데 원작 소설을 읽는데 대사 몇 개에 꽂히더라.
<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제목도 억지로 쥐어 짜는 거 같잖아. 난 사실 원태연이란 사람을 잘 알지 못했다. 여자들처럼 열광적인 팬도 아니었고. 편하게 책을 읽어봤는데 전형적인 기획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진실하고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라.

남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뭐야? 외로운 거. 제일 좋은 건? 밥 먹는 거. 이런 거?
그 런 부분에 관객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영화 볼 때 두 시간 내내 재미있어야 보는 건 아니잖아. 공감대가 있어야지. 10대나 20대 여자들이 보는 멜로라면 이게 맞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일본에서 이름도 있으니까. 일본 감성엔 <숙명>보단 이게 낫잖아.

<겨울연가> 같은 지점이 있지. 순애보 사랑 말이다.
안 봐서.

사실 멜로는 배우한테 더 어려운 장르다. 많은 감정을 요구하니까.
나 도 멜로를 좋아하는데 정말 배우가 접근하기엔 쉬운 장르가 아닌 거 같다. 성격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니까 짜증도 나지.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너는 내 운명>처럼 감정을 쏟아내는 영화는 또 아니니까. 그나저나 극장이 안 잡혀서 걱정이다.

박진표 감독 영화도 얘기가 있지 않았나? <내 사랑 내 곁에>는 왜 안 했나?
솔 직히 나하고 관련한 기사는 영화사가 자기 입장이라고 해서 단독으로 냈는데 되게 비겁했다. 그 영화는 돈이 꽤 들어가는 영화다. 돈이 별로 들어갈 게 없는 영화인 거 같아도. 내가 처음엔 영화계 사정이 어려우니까 개런티를 안 받겠다고 그랬다.

개런티를 안 받는다고?!
응. 안 받겠다. 대신에 나 때문에 생기는 일본 판권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권리를 주장하겠다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지.

그래?
그래서 안 됐지. 솔직히 박진표 감독님을 만나 뵙고 그러니까 너무 좋더라. 난 박진표 감독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더 미안해서 연락을 못하고 있다. 열렬한 팬이니까.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또 날 써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또 기회가 될 거다.
나 그 때 영화사도 많이 찾아갔다. 하지만 나도 소속사에 계약금을 받고 엮인 사람인데 어느 정도 권상우에 대한 보상을 (소속사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전혀 없으니까. 아쉽더라. 우리 회사에서도 접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한국 영화판이 이렇게 잘못된 게 나 때문만은 아닌데. 그래서 결국 안 하겠다고 했더니, 그 때서야 모든 조건을 다 맞춰주겠다고 하는 거다.

빈정 상하지.
그렇지. 그렇다는 건 기 싸움을 한 거 아닌가. 그 동안.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안 한다. 그랬다.

박진표 감독님한텐 사람을 울리는 재주가 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도 그렇게 울려야 한다.
울걸? 울 거다. 정말 울만한 포인트가 있다.

어떤 거?
내 가 연기한 케이라는 사람은 시한부 인생을 산다. 그래서 몸에 힘을 빼고 연기를 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연기했다는 거지. 그렇게 억누르다가 몇 번 터뜨린다. 한 세 번 케이의 감정이 나온다. 그 때 관객도 울 거다. 웨딩 숍 앞에서, 꽃집에서, 그런 몇몇 장소에서 케이가 자기 안의 슬픔을 보여줄 때가 있다.

원태연 감독은 신인이다. 시인이면서 원작자이긴 하지만 감독은 처음이잖아. 잘 이끌어주던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모험이었던 건 감독님과 내가 서로 처음이었다는 거다. 어떻게 서로한테 맞출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거였지. 그런데 난 늘 그렇게 신인 감독들하고 작업을 함께 했던 거 같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야수>가 다 신인이었다. 유하 감독도 두 번째 작품이었고. 늘 모험적이었던 거 같네.

일부러 그런 건가?
하다 보니까. 솔직히 기회가 되면 다시 유하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다.

<말죽거리 잔혹사> 끝나고 또 하기로 했었잖아.
<비열한 거리>를 내가 하기로 했었지. 그런데 또 빈정 상한 게 있어서....
배우는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숨은 재능을 끌어내니까.
그 렇지. 점점 더 느낀다. 그래도 인간적인 게 중요한 거 같다. 점점. 능력도 중요하지만, 능력이 안 되도 나를 믿어주는 거 말이다. 이게 사람 냄새 나는 작업인데 그거 없으면 안 되지. 나도 겪으면서 실망한 게 몇 개 있었고. 아무리 뛰어난 연출자라도 그렇게 신뢰를 잃으면 작업 같이 못 한다.

유하 감독님도 이번에 <쌍화점> 찍으면서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던데.
솔직히 난 안 되길 빌었다.

헉!
잘 되지 않았나?

그럭 저럭 됐지. 그런데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건 용서하는 관계가 쉽나.
(원)태현이 형이랑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나 사담을 나눌 때 잘 맞았던 거 같다. 남자들끼리 수다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케이랑 감독님이 생각하는 케이랑 많이 일치했다. 현장에서 조정할 게 별로 없었다.

케이는 아주 불쌍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으로 자기 인생을 완성시키고 싶어한다.
외로운 사람이다. 외로워서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랑을 완전히 가질 수도 없다.

사랑이 누군가를 구원해줄 만큼 그렇게 대단한 건가.
적어도 나한텐 되게 중요한 거 같은데. 사랑 안 하고 어떻게 사나. 사랑은 사람을 안 늙게 하고 부지런하게 만드는 거 같다.

결혼이 곧 마지막 사랑인가. 끝이어야 하니까 끝이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지. 마지막 사랑이어야 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사랑이니까 마지막인 거지.

아, 일단 축하 드린다. 아이가 생기면 결혼의 느낌도 완전히 다르다던데.
완전히, 다르다. 나도 실감이 안 난다. 우리 애긴가. 이게 내 새낀가. 예쁜데. 분명히 아내와 나를, 가족을 이어주는 고리이고 내 분신이잖아.

가족을 갖고 싶었나?
나 는 정말 가족을 갖고 싶었다. 나도 <슬픔보다 더 슬픔 이야기>의 케이나 크림처럼 외로움이 너무 많았던 사람이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형이랑은 다섯 살 차이가 났는데 남자들끼린 그 나이 차이면 공감대도 별로 없잖아. 늘 혼자 지냈던 거 같다. 학교도 혼자 다니고 군대도 혼자 다녀왔고. 그래서 혼자 있다는 게 너무 싫었다. 가족이란 공동체를 어서 빨리 만들고 싶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 계획에서 보면 이 나이쯤 해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외로워 하는 사람은 여자도 가볍게 못 만난다.
내가 그렇다. 누굴 만나도 늘 결혼을 생각했다. 그냥 가볍게 만나지 않았다. 언제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걸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엔 유효 기간이 있다.
당연히. 나도 환상에서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력이 필요하지. 연애를 오래 하면 지치잖아.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난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멜로 영화를 관객들이 보는 건 그 사랑의 완벽한 어떤 순간만을 옮겨놓았기 때문일 거다.
맞 다. 나도 결혼을 결정한 게 며느리로서, 와이프로서, 엄마로서 안 질릴 거 같은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와이프가 남자에게 질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게 컸다. 그런 생각엔 아직 변함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말이다. 손태영 씨보다 내가 결혼을 더 잘 한 거 같다. 그냥 인터뷰성 발언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장가 잘 갔다고.

결혼할 즈음해서 잡지랑 화보 촬영할 뻔 했었지? 결국 엎어졌지만.
그 것도 성격이, 내겐 약속이 되게 중요하다. 남한테 어려운 소리도 안 하고 남이 나한테 어려운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한다. 남한테 폐 끼치는 게 싫다. 성격이 급해서 10만 원을 빌려서 몇 시간 후에 꼭 갖다 주겠다고 하면 꼭 줘야 한다. 약속이 나한텐 되게 중요하다.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키는 일이 되게 많다. 이쪽에서.

아.
우 리가 최고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도 아니고. 우린 뭔가 사진을 남기고 싶었던 건데. 갑자기 떠나기 며칠 전에 장소를 바꾸자고 하더라. 앞서 말한 영화사랑 똑 같은 거지. 빈정 상한 거지. 그것도 떠나기 이틀 전에 얘기하더라. 그러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던 거야.

둘이 어쩌면 배우여서 질리지 않는 건 아닐까.
사실 난 배우는 안 만나려고 했다. 내가 배우를 안 만나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짧은 자기 생각이고.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거지.

사랑은 이기적인 거 아닌가.
내가 사랑을 해보니까 남을 위한 사랑은 못한다. 질려서. 나한테도 좋은 사랑을 해야 한다.
<슬픔보다 슬픈 이야기>는 가장 이기적인 사랑을 가장 이타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그게 관객한테 통해야 하는데.

흥행이 많이 걱정되나 보다. <숙명> 때문인가.
쪽 팔렸지. 승헌이랑 내가 나왔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숙명>은 잘 될 수가 없는 제작 환경이었다. 촬영도 몇 번씩 중단됐고. 솔직히 난 후시 녹음도 안 했다. 배우들 가운데에서도 돈 못 받은 사람도 많다. 기본적인 약속도 안 지켜졌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김해곤 감독님도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도 난 내 캐릭터가 재미있었다. 솔직히 승헌이보단 내 캐릭터가 재미있었지. 그게 재미나서 감독님하고도 즐거웠다. 흥행만 안 됐을 뿐인데. 그런데 <숙명>이 막 최악의 영화로 뽑히고 그러니까.

어디서 뽑았나? 기억하지?
어디더라. 기억했는데.

배우든 감독이든 영화든 다 평가의 대상이 되니까.
그런데 내가 봐도 냉정하게 잘 될 영화는 아니었다. 액션도 말도 안 됐지. 승헌이가 막 다 이기고.

솔직히 <숙명>을 보면서 대사를 잘 못 알아들었다.
후시를 안 했으니까. 영화 홍보도 안 했잖아. 난 아닌 건 안 한다. 그 때 난 바로 호주 갔었다.

성격이 급해서일까. 정확한 딕션이 힘든가.
그렇겐 생각 안 하는데? 이제까지 작업 하면서 발음 때문에 문제가 돼 NG가 난 적은 없다. 성격이 급하지. 그래서 그런 거지. 내가 정말 배우의 재능이 없고 보여줄 게 없으면 내 성격으론 절대 연기 안 한다.

배우로서 재능이 있고 보여줄 게 있다고 생각하나.
남들보다 보여줄 게 있고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없으면 나 일 안 한다. 어차피 평생 연기 할 생각도 없고.

기억난다. <화산고> 때도 신인 배우인데 평생 연기할 생각이 없다고 했었다.
그랬을 거다. 건방지고 싸가지 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진심이다. 배우가 너무 친절하고 모범적인 것처럼만 보여서도 안 된다. 솔직할 땐 솔직해야지. 그러려면 배우는 뭐 하러 하나. 이렇게 활동하거나 인터뷰도 하지 말아야지.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살고 싶은 모양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다 보여줄 순 없지. 남들이 50% 보여준다면 난 70%는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0%는 나도 사생활이란 게 있으니까.

어느 여배우를 만났더니 바로 그래서 힘들다더라. 남들의 시선 때문에 집에만 있다고 했다.
여배우 말을 어떻게 믿나. 거 참.

어? 그런 건가? 배우한텐 인터뷰도 연기라고 하긴 하지.
난 가장 솔직하고 당당 하려고 한다. 권상우란 이름을 한국 사람들이 다 아는데 숨기려고 해서 숨겨지나. 옛날엔 뭐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나. 그 때와 난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늘 당당한 거고.

옛날에도 잘 생겼으니까 여자들이 알아보지 않았나?
뭘 잘 생기나. 좀 깔끔하게 생긴 거지. 아주 잘 생긴 얼굴은 아니고, 그 때도 느낌은 있었던 거 같다.

예전에 어느 중견 배우의 집에 간 적이 있다. 그 선배의 집이 당신이 옛날에 살던 집 옆이더라.
아. 뵌 적은 없는데 얘기만 들었다.

그런데 그 선배가 그러더라. 당신과 김태촌 씨가 함께 살았고 같이 운동하는 것도 봤다고.
정말? 그 분이?!

정말이다. 먼저 물어봐서 얘기해준 것도 아니다.
말 도 안 된다. 무슨 소리야. 나하고 운동을 같이 하다니. 말도 안 된다. 난 정말 그 사람을 모른다. 그게 다다. 좀 자세하게 얘기하면, 내가 일본 팬 미팅에 참여한다고 내 옛날 매니저가 나 몰래 도장을 찍은 적이 있다. 이 나쁜 놈들이. 그런데 일본 쪽 담당자는 야쿠자였던 거지. 결국 내 옛날 매니저와는 다른 것 때문에 멀어졌다. 그런데 일본에서 그 쪽으로 연락이 간 거지. 팬 미팅을 하기로 해놓고 왜 안 하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내 핑계를 댄 거다. 권상우가 도장을 찍어놓고 안 하겠다고 한다고 했겠지. 그래서 일본 야쿠자가 한국의 조직 폭력배인 그 사람한테 연락을 했고, 난 전화를 받은 거지. 난 전화 받은 게 전부다. 뉴스에 나온 게 전부고. 난 본 적도 없고 그 사람을 알 리도 없고. 그 말씀 하셨다는 선배 분은 정말 어른이 아니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실수한 거 같다. 괜히 오해를 만든 건가.
괜찮다. 난 나가서 얘기 안 하니까.

유달리 권상우에 대해선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 안 그래도 연예인은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데.
사 람들이 그런 거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난 신경 안 쓴다. 나만 행복하면 되니까. 손태영 씨랑 둘이서 너무 행복하게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딱 전화가 온 거다. 그러더니 나보고 괜찮냐는 거다. 힘내라고. 어이 없지. 난 행복한데, 뭐야. 상관 없는데. 사람들이 나에 관해서 모든 걸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문제다. 가까운 사람이든 멀리 있는 사람이든 말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나.
아 니다. 거꾸로 난 사람을 되게 잘 믿는다. 그래서 손해를 많이 본다. 원태연 감독님이 나한테 오시더니 그러더라. 너는 정말 사람이 좋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러더라. 넌 참 바르구나. 나를 겪어보니까 내가 남들 좋은 면을 먼저 얘기하더란 거다. 나쁜 점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난 누군가를 처음 봤을 때 좋은 점을 먼저 찾으려고 노력한다. 더 믿고 친해지려고 한다.

반대로 사람들은 권상우의 나쁜 면을 먼저 보려고 한다.
대중들의 심리니까.

권상우 이미지는 사실과는 다르게 많이 왜곡돼 있는 거 아닌가. 잘 놀러 다니고 여자 관계 복잡하고.
난 잘 놀지도 않았다. 나도 모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모델 후배들과 홍대에 놀러 간 적은 있다. 후배가 DJ도 하니까. 그 정도다. 아는 사람은 안다. 내가 잘 안 논다는 거. 솔직히 정말 많이 안 놀았던 거 같다. 나만의 목표가 있었거든. 나름대로 꽂힌 걸 열심히 했던 거 같다. 나 보면 술 담배 잘 할 거 같다고 하지만 난 담배를 피워본 적도 없다.

얘기를 잘 하니까 유들유들하게 보이는 구석도 있지.
말은 잘 하지. 그런데 옛날엔 말도 잘 못했다. 친한 친구들끼리 있을 때만 말을 좀 했나. 배우를 처음 시작했을 땐 낯도 가렸고. 그러다 일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기니까 입이 뻥 뚫린 거 같다.

결국 너무 솔직담백한 성격이라 손해를 보는 거 같다.
그런 것도 같다. 내가 빨리 잘 된 편이잖아. 일본 시장에선 날 돈으로 보고. 주변에 날 돈으로 보는 사람들이 되게 많았다. 참 여러 사람이 있었다.

코스닥 시장을 취재하다 보면 권상우란 이름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권상우의 소속사가 어디에서 어디로 바뀌었다. 그러면 그 회사 주가가 오른다. 권상우란 이름이 이용당하는 거지. 알고 있었나?
뭐, 나쁘지 않네. 내 이름이 값어치를 한다니. 하지만 코스닥 얘기는 모르겠다. 무슨 얘긴지.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가.
정 말 하고 싶었다. 내가 군대를 일찍 다녀왔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연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딱 1년 만. 그러다 점점 욕심이 생기고 포기를 못하게 됐다. 그 때부터 내 꿈과 내 인생의 그림은 다 정해져 있었다.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씩 다 맞춰져 온 거 같다.

그 그림이 어떤 건가.
일 찍부터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나라가 싫었다. 하늘은 파랗고 바다도 파랗고 천연 잔디에서 축구를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낚시를 하는 그럼 삶을 꿈꿨다.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난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다. 지금은 욕심도 많지만 그건 다 그 꿈을 위한 거다. 그런 꿈이 없었다면 결혼도 쉽게 하지 못했을 거다. 나도 여러 사람이 아는 배운데, 결혼을 하면 잃는 게 많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연애 하면서도 안 한다, 결혼조차 안 한다고 거짓말을 하지.
난 아니다. 남들은 나랑 손태영 씨가 애가 생겨서 결혼을 한 걸로 오해하는데 모르는 소리다. 난 애를 갖고 싶었다. 애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좋아했다. 모든 그림이 지금까지 다 잘 맞았다. 내 그림 안에서 보면, 내가 연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에너지가 안 떨어져서 좀 더 나이 먹을 때까지 연기를 하게 된다면 그 때까진 할 거다. 하지만 그 시기도 40대 초중반을 넘기진 않을 거 같고. 그렇다면 앞으로 10년이겠지. 그래서 지금부터 다른 걸 준비하고 있다. 큰 건 아니지만 내가 노력해서 재미를 느끼고 우리 가족을 위한 수입이 생기는 일이다. 그런 사업도 조만간 오픈 할 예정이다.

아.
내 가 아버지가 없이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다. 내 자식에게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아버지한테 뭘 배웠고, 고기 잡는 것도 아버지한테 배웠고, 아버지와 함께 농구도 했고, 차도 처음 몰았고, 그런 거. 지금 내가 열심히 하는 것도 그런 꿈들을 위한 거다. 난 그렇게 낭만적으로 살고 싶다.

아버님께선 언제 돌아가셨는지.
내가 태어나고 6개월 있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더 내 자식한테 좋은 아버지가 돼주고 싶다.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거에 대해서 결핍을 느끼게 돼 있다.
아쉬움 같은 거지. 그래서 그걸 채우고 싶고 채워주고 싶은 거다. 그러면 내가 못 받은 걸 보상 받을 수 있을 거 같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것도 그런 결핍 탓이겠지?
외롭다. 사주를 봐도 난 그렇게 외로움을 많이 탄다더라. 난 혼자 있어도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 영화를 보든 운동을 하든. 사람을 만나도 술도 잘 못 마시는데 함께 있는 게 좋다. 커피숍에서 얘기하는 것도 좋고.

사람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 자체가 좋은 모양이다.
맞다.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나한텐 몹시 중요하다.
결혼은 무엇보다 깊은 관계지. 그런 사람들은 연애도 깊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그게 결혼이든 가족이든.
또 결혼을 하면 내 삶의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여긴다. 지금까지 나와는 다른 내가 될 거 같은.
나도 그걸 전제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권상우한텐 착한 남자의 얼굴과 나쁜 남자의 얼굴과 순수한 청춘의 얼굴과 터프 가이 얼굴이 다 있다.
그 래서 나도 내 얼굴이 좋다. 친한 배우들 가운데엔 잘 생긴 배우들이 참 많다. 장동건 선배가 원빈이나 승헌이나. 그런데 내가 그렇게 생겼다면 그래서 여러 가지를 못했을 거 같다. 난 나쁜 놈도 할 수 있고 어리어리한 놈도 할 수 있다. 해보고 싶고. 그게 내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연기만 좀 더 상황에 맞게 잘 할 수 있다면 여러 작품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감독들이 보면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히고 싶어지는 얼굴이다.
나도 그런 좋은 감독들하고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기회가 잘 닿지 않는 건 왜일까. 꽃미남 이미지가 있어서인가.
에이. 난 그저 깔끔하게 생겼지. 하지만, 여자들이 장동선 선배 얼굴보단 나처럼 생긴 얼굴을 더 좋아해. 뭔지 알지?

그게 진짜 매력인 건데.
내 아들도 나처럼 생겼다.

연기나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나?
그 럼 당연하지. 내가 노는 것처럼 보여도 정말 진지하다. 난 영화나 드라마가 결정되면 무조건 찾아가는 연기 선생님이 계시다. 사실 이게 나 정도 급이 되면 쪽 팔린 걸 수도 있거든. 거기 가면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그런다. 하지만 난 간다.

가서 무슨 얘기를 하나.
음료수 사 들고 가서 선생님이랑 시나리오 같이 보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런 게 좋겠다 그러는 거지. 무슨 답을 얻어오는 건 아니다. 단지 그런 게 좋다. 대화를 한다는 거.

자신의 연기를 보면 어떤가?
솔직히 쪽 팔린 것도 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그 나름대로 재미있게 했다. 좋았다. <말죽거리 잔혹사>도 좋았다. <야수>도. 그런데 솔직히 <신부수업>은 보고 좀 쪽 팔렸다.

<신부수업>에선 뭐가 달랐나.
솔직히 감독님이 약간 미숙했던 거 같고 나도 잘 못했고. 좋은 분인데. 솔직히 감독은 현장에선 나쁘고 싸가지 없어도 된다. 현장에서 배우를 지배하고 영화를 잘 찍으면 된다. 배우도 마찬가지고.

스스로 더 나은 배우가 돼 가고 있다고 느끼나.
트릭적인 거.

테크닉?
테 크닉은 분명히 늘고 있다. 내 안에 그 모습이 있을 땐 그 모습을 꺼내는 재주는 늘었다. 하지만 감성은 어떻게 보면 옛날이 더 좋았던 거 같긴 하다. 가끔 내 안에서 어떤 인물을 꺼내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그런 힘은 옛날이 더 좋았다. 연기는 공부하는 것처럼 그렇게 늘고 그러는 건 아닌 거 같다.

연기를 오래 할수록 안에서만 인물을 찾아내는 게 어려워진다. 그래서 배우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더라.
게 다가 유명해지면 더 어렵다. 이미지와 기대감이 생기고 그걸 깨는 것도 힘들어지고. 거꾸로 기대치에 부응하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작업하면서 감독한테 뭔가를 자꾸 요구하거나 편집실에 찾아가거나 하진 않는다. 난 그런 거 안 한다.

당신한텐 약속과 믿음이 중요한 거 같다. 당신 할 일을 다 하고 상대가 그 만큼 해주길 기대하는 거.
난 사람을 잘 믿는다니까. 매사 그런 거 같다. 그게 내 성격이고. 작업 할 때도 똑같다. 영화는 감독 거다. 배우는 그 안에서 잘 놀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매 장면에서 힘을 주면 야수가 된다. 내가 만족할 만큼만 하고 나머진 상대한테 믿고 맡긴다.

이 바닥에서 버티기가 쉽지가 않지? 권상우는 보이는 것과 다르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나?
그래서 <무릎팍 도사>에 나갔잖아.

오늘 방송인가?
오 늘하고 다음 주까지 2주 동안 방송된다. 나 정말 성의 있게 했다. 방송사에 결혼식이며 신혼 여행 사진이며 동영상까지 다 보냈다. 어린 시절 사진도 몇 장씩 보냈고. 장모님한테 내가 쓴 편지, 손태영 씨한테 쓴 편지도 다 갖다 줬다. 내 느낌을 전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권상우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 결혼한 이유는 진실하다. 인간 권상우를 보여주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

정말인가.
농담처럼 말하자면 난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 권상우는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으로 손해를 많이 본다. 일반인 성격으론 따봉인데. 성격도 진짜 좋고. 나처럼 재미있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런데 배우로 살기엔 참 더러운 성격이다.

자신을 너무 정확하게 보고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한테 인간 권상우를 보여주려고 했던 거다. 자기 소신도 있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애구나. 그걸 전달하고 싶었다. 악플에 대처하기 보다는.

그러고 보면 스타 권상우나 배우 권상우에 대해선 말한 적이 있어도 인간 권상우에 대해선 무심했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난 스물 세 살에 제대해서 스물 다섯 살부터 배우를 했다. 지금이 서른 넷이니까 9년 밖에 안 했다. 무명부터 하면 10년이 넘긴 하지만. 그나마도 대중들이 나에 대해 아는 건 클라이맥스에 올라간 7년 정도다. 내 인생 전체에서 봐도 배우를 한 기간은 앞으로 살 날을 생각해도 1/5도 안 될 거다. 배우로서 산 내 인생보다 내 인생,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더 중요한 거다. 옛날 가수 이승진처럼 그냥 그 때 그런 가수가 있었다 정도로 기억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 얘길 하니까 마음에 와 닿는다.
안 그런가? 배우란 건 단지 그 당시에 했던 무엇이지. 어쩌면 나중이 되면 정말 내 인생에서 봤을 때 배우란 직업은 하나의 해프닝 밖에 안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당연히 인간 권상우의 삶이 더 중요한 거지.

사람들은 배우 권상우의 어떤 모습만 영원히 기억할 거다.
그래서 나중엔 한국에 안 올 것도 같다. 내가 초라해지더라도. 거꾸로 잘 살고 있어도. 막연하게. 한국에 안 살 거 같다.

이미 당신 부부는 졸리나 피트처럼 유명해졌다. 졸리나 피트처럼 잡지에서 사진도 엄청나게 찍었고.
좀 다르지. 그들은 그럴 만 하지. 돈도 엄청나게 받았잖아. 만약에 그들만큼 우리한테도 합당한 돈을 준다면 나도 우리 아이 사진을 공개할 거다. 사생활이 노출되는 대신 그들에겐 그만한 대가가 주어지니까. 우리 나라에선 그게 아니잖아. 한국의 연예계는 그렇게 안 돌아간다. 난 1년에 CF를 7개씩 찍은 적도 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아, ''페이스 숍''하고는 경영진과 개인적인 친분도 있지 않았나.
난 아시아 6개국 팬 미팅을 다 돌아줬다. 돈도 하나도 안 받고 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안 해줬을 거다. 난 내가 하고 있는 광고니까 최선을 다 해준 거다. 지금, 별 말도 없다. 나랑은 생각이 다른 거지. 아무리 돈이 많거나 그래도 난 그런 건 싫다. 솔직히 난 지금 먹고 살만 하고 건방진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있고. 내가 충분히 행복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 갖고 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요즘 운동은 열심히 하나.
이제서야 다시 시작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찍을 땐 죽어가는 아이라 일부러 안 했다. 좀 나태해진 것도 있고.

몸을 관리한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근면한단 얘기다. 자길 이긴다는 뜻이고.
힘 들지. 운동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 때도 많다. 내가 스스로 인정하는 건 그래도 내가 나를 이겨낸다는 거다. 아까 짬뽕 먹는 거 봐서 알겠지만 난 음식 조절은 안 한다. 대신 운동을 하면 남들 두 시간 동안 할 운동량을 한 시간 동안 할 정도로 열심히 한다. 거의 안 쉰다. 나랑 같이 운동하면 못 따라온다. 죽어라 한 시간 동안 운동하고 샤워하러 간다. 그렇게 10년 넘게 했다. 요즘은 일주일에 3일 정도 하나.

<숙명> 때 몸을 많이 보여줬지.
<숙명> 땐 제대로 보여준 게 아니었다.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기도 한데 어쩌다 보니까 몸이 완전하지 않을 때 자꾸 노출을 하게 되는 거 같다.

<더 누드>라는 일본 화보집을 내지 않았나? 최근에?
그 것도 바빠서 제대로 몸을 만들지 못하고 찍은 거다.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요즘은 특히 아들 때문이다. 난 내 아들이 스무 살이 돼도 지금 같은 몸으로 함께 뛰어다니고 싶다. 그런 욕망이 있다. 진짜 나중에 언제 어딜 봐도 권상우는 항상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손태영 씨와 연기 얘기는 안 하나.
전혀. 내 시나리오도 전혀 안 읽는다. 일할 땐 전화도 안 한다.

그런 얘기는 송승헌 씨와 자주 할까. 그럼?
농담처럼 얘기하지. 내가 승헌이한테 자주 농담을 한다. 넌 얼굴도 잘 생기고 다재다능하고. 넌 연기만 잘 하면 된다고. 친하니까 서로 장난치는 거지.

드라마도 곧 시작하지 않나? <신데렐라맨>? 1인 2역이라고 들었다. 개런티 두 배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고생스럽지. 더는 안 주고 깎으려고 하던데?

깎으려는 명분이 뭔가. 권상우 씨가 요즘 흥행이 좀 안 됐다? 결혼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게 있는데.

결혼과 가족은 권상우란 사람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젊 은 배우들 중엔 빨리 한 거지. 그래서 우리의 행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신경 안 쓰는 것처럼 굴지만 결혼하고 싶어도 안 하는 사람도 많다. 난 전혀 새로운 아이콘이 되고 싶다. 지금 내 바람은, 브란젤리나처럼은 될 수 없겠지만, 손태영 씨와 나는 아기와 함께 작품에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성실한 남편과 성실한 아빠로, 또 아빠 같지 않은 젊은 남자로 그렇게 보이고 싶다. 때론 파파라치한테 멋진 사진도 찍히고 싶고. 가식적인 게 아니라 솔직히 그런 모습으로 대중들한테 기억되고 싶다.

무엇보다 당신은 어떻게 하면 스스로 행복한지 알고 있는 거 같다.
난 원래 아기도 워낙 좋아했다. 결혼도 빨리 하고 싶어했고. 정말 말들도 많은데. 난 정말 손태영 씨가 아기 가졌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엄마한테 바로 전화해서 그랬다. 나 결혼해요. 아기 가졌어요. 그렇게 얘기했던 사람이다. 그게 마치 거짓말쟁이처럼 만들어지고, 자기네가 그렇게 욕해놓고 다른 말을 하면 또 말을 안 했다고 그러는, 그런 상황은 싫다. 누가 뭐래도 난 지금 행복하다. 정말이다.

Posted by isss :

연합뉴스 기자가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강연을 왜곡 보도했군요.

강연 내용이 하반기 경제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이었는데, 기사 제목이 '시골의사' 박경철 "하반기 경기회복 예상" 입니다. 강연 내용과 정반대의 보도이죠.

이에대해 이미 연합뉴스를 전재로 주요 신문들이 일제 보도했군요.

'시골의사' 박경철 "하반기 경기회복 예상"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시골의사' 박경철 "하반기 경기회복 예상"-매일경제

donga.com[뉴스]-‘시골의사’ 박경철 “하반기 경기회복 예상”

참 어이가 없겠습니다. 강연내용에 대해 상당부분 포함된 기사를 보면 최소한 동영상을 봤다거나 강연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것인지 일부러 부정적인 입장은 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강연의 70%는 부정적인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이에 대해 시골의사님이 직접 블로그에 반박 글과 기사에 대한 첨삭을 하셨습니다.

연합뉴스 권혜진 기자님..!!

시골의사님은 아래와 같이 강연을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강연을 듣고나니 다들 마음이 무거우시지요?. 그러나 이안에서 유일한 희망요인들은 우리가 그나마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직 확정된 손상이 적다는 것이니, 그걸 발판으로 빨리 시스템을 바꾸고, 미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중에 언젠가 이 위기가 끝나면 그때는 이일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공무원들이 부디 잘해주십시오. 아울러 사회적 약자들이 쓰러지면 우리전부가 공멸합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정부의 심정은 알겠지만, 기자가 이런 왜곡 보도는 하지 않아야 할 일 아닙니까? 기자의 변명이 듣고 싶습니다.

Posted by isss :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쓰네요.

이 블로그 시작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글이 안올라온적이 없었는데...
일주일여 인터넷 하기가 쉽지 않은 곳에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블로그도 방치해두고 아무런 소식도 어떤 내용도 쓸 수 없었습니다.

중간중간 큰 뉴스들을 듣기는 했습니다. 지난 주 참 많은 일이 있었더군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온 것은 역시 최진실 자살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아름다워보이지 않습니다. 루머를 만들어냈던 당사자의 태도도 그렇고, 이것을 악플로 몰아가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정치권은 이때를 기회로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입법을 하려고 있고, 유족은 '최진실법' 사용을 금지해 달라고 했다고 하죠. 장례식장에서 기자들은 하이에나처럼 연예인들을 향해 달려들고 셔터를 누릅니다. "소감"은 당연히 묻지요. 악플만큼이나 기사들은 확대되고 추측되어 보도되었습니다.

사실 악플보다 기자들의 기사가 더 큰 유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채"루머도 악플이 원인이 아니라 증권가의 찌라시에 나왔던 내용이었습니다. 리플로 허황된 루머가 돌더라도 그것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워낙 기상천외한 이야기도 많거니와 그것을 다 읽어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악플에 있는 가정은 그렇게 묻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자가 그대로 활자화해서 보도를 한다면 악플과는 다른 파워를 가집니다. 많아야 100명이 보게될 악플이 최소한 수만명 많게는 수십/수백만명이 알게될 내용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채'보도를 비롯해 다양한 루머들은 기자들을 통해 보도되고 확대되고 있습니다.

리플을 중계해서 보도하는 듯한 기사가 요즘 무척 많습니다. 악플은 바로 그 기사였습니다.

PS. 장례식장 기자 취재는 제발 막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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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출입기자가 본 이명박 정권 감상기입니다. 이 기사는 동아일보의 월간지 신동아에 실린 기사입니다. 출입기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이 소속된 매체에서는 보도하기 어려운, 그러나 하고 싶었던 얘기"라는 것과 전체적인 글의 뉘앙스를 보아서 조중동 기자나 친MB 측 언론 기자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기자들은 보고 듣는 것이 우리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특히 청와대 출입기자라면 이명박 정권을 가장 근접거리에서 목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어떤 내용이 있는지 요약해봅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고싶다면 아래 링크로 가시기 바랍니다. 동아일보 클릭하기 싫으시다면 클릭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동아 청와대 출입기자의 MB 정권 감상기

이 기자가 가장 크게 비판하는 것은 먼저 외교입니다.

외교에서는 확실히 잘못했다고 생각하나봅니다. 먼저 순방 순서가 이제까지는 항상 미-중-일-러 순이었는데, 일본을 먼저 방문해서 최대교역국이고 북한과 긴밀한 중국을 서운하게 했지요.

일본에서는 일왕에게 고개숙이며 인사한 것도 기자들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며 전송했다고 합니다. 또, 권철현 주일대사의 위안부와 독도 문제에 대한 적절치 못한 발언이 문제였습니다.신(新)한일시대를 선언했지만, 일본의 태도는 어떤지 확실하지도 않아서 결국 문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 촛불을 더 키웠다고 합니다. 적절치 못한 대통령의 발언은 말을 할 수록 촛불 집회 참여 시민을 늘렸었죠.

그런데, 쇠고기 파동이후 한미관계에 틈이 생겼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열린 G8 회담중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려 20분이나 일찍 회담을 끝냈다는 것은 외교상 큰 의미라고 하네요. 당시 언론과 청와대는 난리가 났지만, 막상 언론에서는 이 의미에 대해크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와도 관계가 매끄럽지 못해 북한과 대화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직후에도 국회에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다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것은 기자도 마찬가지인가봅니다.

외교에서 가장 많이 비판을 했는데, 지지율을 까먹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실력 부족이라고 평가합니다. 실력의 요체는 인사인데 인사의 실패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죠. 형님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나, 장관의 부적절한 인사와 조급한 인사도 이해가 안된다고 하네요. 또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달리 국장급 인사도 청와대와 조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관들의 힘이 많이 빠졌다고 합니다.

이 기자는 그러면서 대운하를 포기하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합니다.

지지하는 40%는 무조건 지지이기때문에 11%만 더 가져와야지 60%가 반대하는 여론조사의 함정에 빠졌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와 비교합니다. 사실 행정수도의 취지와 대운하의 취지를 생각하면 비교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데, 대운하에 우호적인 이 기자는 밀어붙이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했나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료유출 사건도 노무현 대통력 측의 방어 수단으로 가져간 것 같다는 생각이고 이명박 정권의 대응이 순수하지 않다고 합니다.

언론과의 관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이전 정권과 큰 차이가 없어서 불만이라고 하네요. 기피하는 모습까지 보이기도해서 사실상 대통령을 만들어준 언론을 홀대한데 실망이 크다고 합니다. 소통부족은 국민뿐만아니라 언론과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MB에게 우호적이던 기자 상당수도 등을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네요. 너무나도 친언론적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결국 이 기자는 언론을 통해 정권을 방어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언론이라는 ‘인격을 가진 프레임’을 통해 국정을 평가한다. 이 대통령은 이 프레임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라고 글을 맺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이 정권이 KBS를 먹으려고 안달일 것입니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보는 것도 소시민인 우리가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사와 외교의 난맥상을 보이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다만, 대운하에 대한 관점은 역시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인 경제 운용에 대한 평가는 전혀 없네요.

마지막으로 오늘 프레시안에 실린 기사입니다. 조중동 기자 중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기자들 사이 국정운여의 긍정적 평가가 2.7%라고 합니다. 또, 84%의 방송기자들은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해임을 반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실제 기사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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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랑이 수준은 폭행으로 표현하면서 왜 전경들의 끊임없는 시민들을 향한 도발과 폭행은 보도하지 않는 것일까? 전경에 대한 폭행보다 몇 배는 더 시민들을 향해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데, 국가 권력의 폭력에는 순응하는 언론이 과연 제대로된 언론일까?

왜 당당하게 조선일보 기자임을 밝히지 못할까? 아니 하다못해 PRESS 완장을 차지도 않고 시민들 사이에서 몰래 찍고 있었을까? 자신도 조선일보가 왜곡을 일삼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거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일까? 그리고 그런 보도에 대해 나는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몇몇은 우발적으로 폭행을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왜 그를 둘러싸고 보호해준 수십명의 사람은 무시하고 마치 모든 사람이 폭행에 가담한듯한 기사를 써댈까?

경찰을 향한 순식간의 도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까?

본사 주완중 사진기자 시위대에 폭행당해

'비겁한 취재'하던 <조선> 기자, 경찰 병력 향해 도주

(박형준님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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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비롯하여 많은 신문들이 연합통신이나 뉴시스에서 뉴스를 받아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연합통신의 기자 수도 메이저 언론을 능가한다고 하죠. 조선을 비롯 많은 신문이나 뉴스들이 연합통신의 기사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속보성 뉴스는 대부분 연합뉴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한번 조선닷컴에서 연합뉴스나 뉴시스가 얼마나 채워지고 있나 클릭해봤습니다. 연합뉴스로 되어있는 기사들은 빨간 줄로 쳤습니다.

아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상위에 있는 기사들 인기기사들의 대부분은 연합뉴스를 단순 보도할 뿐이었습니다. 속보성 뉴스에서는 조선일보 자체 기사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네요. 그래서인지 조중동 뉴스 끊어도 다음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것도 맞습니다. 포털 뉴스는 속보성 뉴스를 주로 보게되는데, 그 소스가 대부분 연합 뉴스이기 때문이죠.

"조중동" 뉴스 끊어도 "다음" 영향 없다

조선일보의 자체 기사는 심층성 기사, 사설/칼럼 및 가십성 기사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면 해로운 기사(?)들만 쓰고 있다고 할까요. 조선의 성향을 반영하는 기사들이 많습니다.

연합뉴스의 기사들도 재가공되어 기자들의 이름으로 바뀌곤합니다. 이럴 경우 유리한대로 편집하고 왜곡하는 "편집의 묘"가 발휘되지요.

개인적으로는 뉴스는 기계적 편집이고 깔끔한 구글 뉴스를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언론사들의 뉴스가 주제별로 편집되어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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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덕 기자의 오늘 두 기사.

시위대, 전대협-한총련-전·의경 예비역들 동원령?    2008.06.29 (일) / 서명덕 기자
   연일 계속되는‘촛불집회’가 최근 심각할 정도로 과격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80~90년대 시위 문화를 주도했던 이른바‘386세대’들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을 통해 다시...
뉴스(조선일보)만 검색 | 사회만 검색
"폭력진압 전의경, 취업 불이익·결혼 못하게 해야" 악담 난무    2008.06.29 (일) / 서명덕 기자
   “전경들, 취업에 불이익을 줘야 합니다”“전경들을 취업시키는 기업들도 불매운동을 해야 합니다”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가 최근 심각한 과격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이 “폭력 진압에 나선 전의경들에게...
뉴스(조선닷컴)만 검색 | 문화만 검색 | 미디어만 검색

올블로그에 올라온 유명블로거이자 조선일보 기자인 서명덕 기자에 대한 글.
조선일보 서명덕 기자님 교묘한 기사 잘 보았습니다.

충분히 악의적으로 쓰여진 기사입니다.
그것도 인터넷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서명덕 기자가 이런 식의 기사를 썼으니, 조선일보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썼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글 잘 봤습니다.

조선일보 구독 해지 운동과 같은 이유로 RSS 구독 해지합니다.

많은 분들도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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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아일보에 난 기사.

경복궁 담장 기와 시위로 500장 훼손되었다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도 참 애매모호하게 써놨네요.

당시 상황을 목격한 문화재청 관계자는 “10여 명이 경복궁 담장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목격됐지만 이들이 시위대의 일원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며 “기와를 던진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기와 위에 올라서는 바람에 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시위대가 그런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꼭 시위대가 그런 듯한 뉘앙스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경찰이 던진 기와에 맞았다는 사람도 나오는 판에 집회참여자가 그랬다니요?

폭력 진압을 했던 5월 31일 상황입니다. 이 사진에는 경복궁 담장에 올라가는 사람없이 깨끗합니다.

출처 : SLRCLUB 시민기자단

아래사진도 없는 것 같습니다.(밝기 조절했습니다)

출처 : http://eulpaso.egloos.com/1916594

딴 곳에서 본 사진입니다. 경찰과 시민들 사이를 찍은 풍경인데, 기와에 누가 올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애매모호합니다.(출처 : 보라빛물든창)

 

그런데, 물대포를 쏘기 시작하는 아래상황을 보면 좀 명확해집니다. 밝게 빛나는 불빛은 방송 카메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영상에 캡춰한 아래를 보면 누가 서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저 위치에 서있는 사람은 시민일까요?

또 다른 사진입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은 집회 풍경을 담으려는 기자들입니다. 동아일보 기자도 있었겠죠?. 동아일보도 그것을 아는 것일까요?

"10여 명이 경복궁 담장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목격됐지만 이들이 시위대의 일원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만약 시민들이 그랬다면 명확하게 시민이 했다고 적었을 것입니다. 물론, 시민들도 몇 명 올라갔다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물대포입니다. 제일 처음 기와에 올라간 기자를 향해서 발사해서 기자들이 황당해 했었죠. 기와를 일부러 떼지 않은 이상 사진처럼 기와가 날아가려면 물대포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죠.

결론은 동아일보 기자의 은근한 X맨 기사????

기자들을 향해 물대포가 발사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추가 : 아래와 같은 사진이 있네요. 아래 사진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분명 올라간 것은 잘못 맞습니다. 앞으로는 안그러겠죠. 그렇지만, 올라갔다고 기왓장이 모두 내려앉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기와는 모두 멀쩡하네요. 올라간 사람들 진압하려 물대포를 뿌리고 그 와중에 기와 훼손이 심해졌습니다. 단순히 올라간다고 기와가 저렇게 내려앉는게 말이 안되죠.

그리고, 마지막은 전경이 던진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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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대형화재로 어제 우리나라 뉴스에도 나왔던 것을 보셨을 겁니다.
이미 연방정부 차원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적극 대응하고 있습니다.
나흘째 산불이 계속되고 있어 이미 50만명이 대피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의 한 방송 기자가 자신의 집이 불에 타고 있는 장면을 직접 방송했다고 합니다. 모든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시작부에 웰컴 투 마이 홈은 모두들 알아들으실 수 있겠죠. 자신의 집이 불에 타고 있는데, 방송을 해야하니 기자 정신이 대단하다고 해야할까요?

아래에서  방송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처음 광고가 지나고 난 후 방송이 나옵니다.



출처 : http://www.firstcoastnews.com/video/player.aspx?aid=113757&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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