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TIME지의 2009 올해의 인물의 한 명에 선정됐습니다. 올해 8월에 서거한 김대중 대통령은 Fond Farewells(추모) 리스트에 선정되었는데 TIME지는 아래와 같은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He will be remembered for bringing democracy to Korea.
그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이끈 인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TIME지의 2009 올해의 인물의 한 명에 선정됐습니다. 올해 8월에 서거한 김대중 대통령은 Fond Farewells(추모) 리스트에 선정되었는데 TIME지는 아래와 같은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He will be remembered for bringing democracy to Korea.
그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이끈 인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을 적은 다음 아고라의 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부터 보시는것들은 전부 영화같은 역사적 실화이며 진실입니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항상 보수라는 가면을 쓴 독재가 지배해 왔었다
그 불편한 진실, 금기를 깨고 도전한 한남자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기전에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인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자신의 업보를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넬슨만델라와 비슷한 동점에서 본다는것
한국안에서는 이사람을 비교할 인물이 없다는게 외국의 시각이다
이 남자는 인생에서 4번의 죽을고비를 넘긴다
살아있는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리울 정도다
어느언론에서 했던 설문조사
"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
모든사람들의 답변
.
.
.
인동초 " 김 대 중 "
이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꿈은 만족하지 못하는데서부터 태어난다. 만족한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다
작은 새는 큰 새의 마음을 이해할수 없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위대한 사람의 뜻 같은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뜻의 크기는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비웃거나 깔보지 말아라
-경상도 부산선거 유세-
" 부산의 파도야 ! 광주의 무등산아 ! 너희에게 넋이 있다면 나 김대중이를 버리지 말아다오 ! "
" 하이고~마 전라도에서 인물이 나온기라 김대중이가 인물이데이~ "
구식인 박정희를 유일하게 이길수있었던 젊은패기 김대중
부산유세 당시 302,452표 반이상 휙득 박정희와 막상막하...
하지만 경남과 부산은 그를 택했다
그후 실질적인 김대중의 승리인데도 박정희의 투표조작 부정선거로 패배
박정희는 경남의 심장부 부산민심을 확인한뒤 김대중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게 된다
그뒤 박정희는 언론과 합세해 인간으로서 할수없는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조작
김대중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호남차별을 만들고 고립 지역감정을 만들게 된다
소히 먹물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호남에서 계속 나올것을 두려워해
호남의 산업화를 막고 자금이 끊기게 만든것이다
분명 이전까지는 지역감정이란 확실히 존재하지 않았다
호남에서는 그전까지 박정희를 지지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우리 현대사에서 '지역주의의 정신병' 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의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 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친놈''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우리 신라 경상도가 똘똘뭉쳐 계속우리만의 시대를 이어가자''
-1971년 동아일보-
그후 독재에 맞선 이젊은 정치인은 총칼든 군사독재와 약자편에 서주지않았던 언론에게
야만적인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늙은 노정객이된 오늘날의 이순간에도
서양의 인종차별보다 더한 비논리적인 온갖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가게 된다
1997년 김대중은 망령같은 차별앞에 극적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독재를 했던사람들에게 일체보복을 하지 않았으며
먼저 다가가 용서와 화해를 하고 손내밀어 평화를 자청했다
박정희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 촛불1세대 민주당과 김대중총재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 국민이 내편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두렵지 않다 "
-군사독재재판 마녀사냥으로 불리우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김대중-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게 죄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결코 타협할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을 두려워했던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려했던 음모
이사건으로 김대중대통령은 다리에 평생장애를 갖게됨
그후 유신헌법으로 박정희는 평생 국민선거없이 자신이 대통령할수있는 박정희왕국 건설 ....
그는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않는 폭력과 야만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부마항쟁-
경남과 부산에서 박정희독재에 항거한 민주화항쟁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은 경남과 부산에 학살명령을 내린다
야만적이고도 군사독재정권의 비열함 무식함이 들어나는 가벼운 그들의 말이었다
다행인지 부하 김재규가 그것을 막은격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유신헌법으로 선거가 더이상 필요없음에
경남부산은 더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말을 안듣는단 이유로
학살을 자행하려 했다
하지만 예언이라도 된것처럼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그뒤를 잇는 신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켜 경남부산에서 일어나려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데 .........
- 신 군사독재정권과 5공화국 공포정치의 상징 전두환의 등장 -
" 군은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
그들의 말은 당연하다는듯 국민을 깔보면서 비웃듯 거짓말이 되고말았다
박정희가 죽어도 그독재란 이름의 전통은 유지되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정권,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 정치적 누명과 보복은 내가 죽어서도 나하나로 끝나야할것입니다 "
전두환 독재군사정권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김대중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인간의 마음은 어떠할까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지금까지 군사독재 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이렇듯 비판을 회피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김대중의 잠언집中-
" 저희는 어디로 가는것입니까 ? "
" 알것없다 우리최강 공수부대는 각하의 명령으로 빨갱이 잡으러 간다 ! 작전명 화려한휴가 다. "
" 그런데 말입니다 서쪽으로 가고있습니다 "
" 이곳은 대한민국 광주 아닙니까 ????? "
" 상부의 명령이다 이놈들은 전부 빨갱이다 때려잡아라 "
" 예 ??? "
" 까라면 까라 새끼들아 "
" 이곳은 다른지역과는 좀다릅니다 저항이 심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요 ! "
" ......네 알겠습니다 ...."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 전부 쏴죽여버려 ! "
" .................... "
-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항쟁 -
대한민국을 지키는 공수부대가 대한민국 국민을 자국민을 학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위사진의 아비잃은 어린소년 눈안에 대한민국 모든 세상의 슬픔이 담겨져 있다
그후 호남에서의 정치투표는 투표라기보단 차라리 피눈물맺힌 한 이담긴 저항 이라고 봐야했다
광주 .... 광주 ..... 서러워 울지마라 광주야 .........
" 전라도 새끼들은 다죽여야된다 빨갱이 새끼들 어디서 전두환각하한테 대느노 ! "
독재정권과 언론에서 빨갱이소굴이라 떠들던 그곳
그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역사의 현실과 진실
유일하게 전두환에게 굴복하지않고 저항한 지역의 이름 " 호남 그리고 빛고을 광주 "
독재나치에게 학살당한 유태인들처럼 광주의 호남인들은 꽃잎처럼 그렇게 죽어갔다
김대중은 옥중에서 신문언론을 접하고
신문을 다적실정도로 가슴찢어지는 통한의 오열을 하게된다
힘없던 자신과 지켜주지 못했던 자책감은 평생의 짐이된다
광주민주화운동후 해외유명인사들의 적극적 김대중석방운동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은 김대중을 석방
감옥에서 해방되고 난뒤 곧장 광주로 직행 망월동 광주민주화 영령들과의 만남
한서린 서러움의 통곡 지울수없는 상처...
콩을 콩이라하고 팥을 팥이라 하는 그들이 대체 무엇이 죄일까
호남과 광주 .... 대한민국 평생의 상처와 아픔이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딱맞는 도시였다
죽어도 죽은게 아닌 그들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후 광주만의 전쟁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전쟁이 되어 전두환은 항복한다.
독일의 어느 목사의 글
그들이 유태인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동성애자들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운동권 대학생 유시민 27세-
판사들에게 외친 그의 한마디
" 전대가리의 개들아 백년만년 잘처먹고 살아라 ! "
이젊은 청년의 눈빛은 군사독재에 대한 원망으로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살기어린 눈빛은 386세대 젊은시절 독재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 해주고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젊은 386세대들의 등장과 밑에 한남자의 등장으로 김대중을 이을 제2의 민주화항쟁은 시작된다
" 이의있습니다 ! 반대토론을 해야합니다 ! "
김영삼이 3당합당 민자당 (김영삼,전두환,노태우,김종필)
독재와 손잡고 대구+경북+경남+충청 지역주의로 민주주의를 배신하려 하자 거세게 항의한다
" 친일군사독재 민자당(한나라당)은 해체되야 한다 ! "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 관심갖지 마십시요 ! "
-1988년 혜성같이 등장한 5공 청문회 정치스타 노무현-
" 와~~~저양반 대단하네 전두환대통령각하 한테 저렇게 해도되나? "
청문회에서 독재자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진 젊은 정치인 노무현
그후 독재와 3당합당으로 민주주의를 배신한 김영삼을 떠나 민주당으로 입당후
호남비방만 하는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어처구니 없게도 부산에서 연일 낙선한다
"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이다 "
경상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오시면 동네이장도 할수없는 말도안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는 빌릴수있지만 건강은 빌릴수없다고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지식이 없는자가 대통령이 됩니까
진짜 지성이 대통령이 되야합니다 민주당 김대중 총재는 그럴자격 충분히 있습니다
조 선건국 이례로 600년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음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패가망신했다. 600년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 거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짖밟고있어도 보란듯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생애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가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가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저는 경상도에서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지역주의자들과 싸울것입니다 사람을 봐주십시요 !
더럽고 아니꼬운 꼴 안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
그래도 그는 그의 정치적고향 부산에 관심을 끊지 않았다
그뒤 지역주의자들과의 전쟁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에게 붙여진 별명 " 바 보 "
정치인이기 전에 투사로써의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이사람은 후에 제2의 민주당출신으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 호남이 선택한 영남 대통령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 "
노무현 대통령 서거후 평생민주화동지였던 팔순이 다된 늙은 노정객의 통곡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입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은 그에게 사랑하는 자식같은 존재였다
같은 민주당 출신인 그둘의 관계는 핏줄이었다 아니 피보다 진했다 ...
나
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
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
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
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
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평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던 미국 민주당 빌클린턴 대통령
늙어서도 공부와 독서를 게을리 하지않는 민주주의의 지성 김대중 대통령을
세계지도자들은 존경한다고 말한다
1981 Bruno-Kreisky 인권상 / 1983-현재 미국 Robert Kennedy 인권상위원회 고문 / 1983-현재 국제고문희생자 구원위원회 고문 / 1983-현재 미국 Pittsburgh La Roche 대학교 이사 / 1983 미국 에모리대 명예법학박사 / 1987 미국 George Meany 인권상 수상,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수상 / 1992 모스크바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 1992 미국 가톨릭대 명예법학박사 / 1993 제3회 애서가 상 (한국 애서가 클럽) 수상 / 1994 미국 New York Union 신학대학교 Union Medal 수령 / 1994 Russia 국제생태학협회 정회원
1995 미국 포트랜드 주립대 명예인문학박사 / 1998. 2 무궁화 대훈장 / 1998. 4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 / 1998. 6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 1998 UN 인권협회 인권상 / 1999. 7 Philadelphia 자유메달 / 2000. 11 [라프토] 인권상 수상 / 2000. 12 노벨 평화상 수상 / 2001. 9 세계정치지도자상 수상 / 2002. 1 민주주의 수호자상 수상 / 2003. 5 제8회 늦봄통일상 수상 / 2003. 8 제7회 만해평화상 수상 / 2003. 12 칠레공화국 대십자훈장 수상 / 2003. 12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 공로상 수상
온
갖 명예로운 상이란 상은 다 탄 김대중,그에게 열등감을 가진 일부 정치 세력들이 온갖 시기 질투를 하며 그를 깍아 내렸지만
국내의 양심세력과 세계의 양심 세력은 그의 업적을 기꺼이 인정 해주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 오랜 정치적 역정을 통해 쌓은 업적
으로 받은 상을 돈주고 받았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외국의 평가는 이렇다.
"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삶의 스승이자 길잡이다"(조스팽 프랑스 총리),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라우 독일 대통령)하는 식이었습니다"
[선진국에 갈수록 그는 넬슨 만델라와 동격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 '20세기의 영웅'이었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방문에 맞춰 DJ 일대기를 특집으로 제작하고 특집면을 만들었습니다.
에
이펙이나 아셈처럼 세계 강대국들이 모두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도 DJ는 거의 언제나 첫 번째의 발언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아셈 때는 주최국인 덴마크의 라스무센 총리가 각국 정상들을 소개하면서 오직 DJ에게만 "excellent
leadership, President Kim"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블레어와 시라크, 주롱지와 고이즈미 같은 쟁쟁한 인물들도 아무 수식어 없이 이름만 소개됐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DJ에 대한 특별대우는 국제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DJ가 참석하는 기자회견이나 투자유치 설명회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일단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정상들간의 외교적 수사(修辭)는 늘 과장되게 마련이지만 DJ에 대한 것은 수사라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술회했다.
"대한민국의 CEO인 그가 이런 'DJ 브랜드'를 갖고 있었으니 이것이 한국에 대한 투자유치와 IMF 극복,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러나 그는 이런 네임밸류에 만족하지 않고 발로 뛰면서 한국 경제와 햇볕정책을 세일즈했습니다. 해외순방 때마다 저는 80에 가까운
DJ가 강행하는 빡빡한 일정에 먼저 넉다운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DJ의
공식일정은 전임 대통령들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유력 언론들이 자신의 국정이념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니 직접 뛰어야 한다고
생
각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연설문은 밤을 새워가면서 직접 작성했고 지난해 2월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을 때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역대 81번째, 아시아인으로서는 일곱번째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된 김 대통령이 노벨상에 처음 후보로 추천된 것은 1987년이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앞장서 서독 사민당 의원 73명이 추천한 것이 최초였다.
당
시 김대중 대통령의 추천 사유는‘한국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과 3단계 통일방안을 제창해 남북 평화에 기여한 공로’였다.
이후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의 공로로 매년 추천되어 올해까지 14회에 걸쳐 후보로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동안 몇 차례나 수상 직전까지 갔었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2년으로 남아공의 만델라 당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장,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 등과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재
미있는 것은 198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리아스 산체스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이 올해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매년 빠짐없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됐다. 1987년의 경우처럼
초기에는 주로 그의 민주화 투쟁에 공감한 외국인들이 추천을 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어 패배한 후 수차례에 걸친 죽음의 고비와 감옥 생활 등을 거치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투쟁에 공감한 결과였다. 외국의 정치인들을 비롯해 김대중 대통령과 친분이 각별한 인사나 교수들이 추천에 앞장섰다.
예
컨대, 지난 1990년엔 스웨덴 웁살라대 닐 엘반더 교수를 비롯한 스웨덴 프랑스 노르웨이의 학자, 정치인, 문인 등 35명이
김대중 대통령을 추천했고, 스웨덴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추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로마 바티칸 주교단체, 미국 가톨릭
계열 대학, 엠네스티 등 해외 인권단체 등도 자주 추천한 단체들이다.
노벨
평화상 추천 자격은 노벨위원회 전현직 위원과 노벨연구소 자문위원, 각국의 현직 각료와 의원, 국제사법재판소 및 국제중재재판소
재판관, 정치학·법학· 철학·역사학 전공학자,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나 단체만이 가능한데,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여러 해에 걸쳐 복수 추천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동안 노벨 평화상에 추천된 사유는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집중돼 있지만, 해마다 약간씩 추천 사유가 달라졌다.
예컨대, 1999년 추천 사유는 IMF 환란 극복 노력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 공로였고, 올해 1월에는 아시아 국가간 관계를 발전시킨 공로로 추천되었다.
조셉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와 런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분과 나는 매우 친분이 두텁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한다고 한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루
빈은 오바마 정권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바마 경제팀이 거의 다 '루빈 사단'에 속해 있다. '스타군단'으로 알려진 오바마
경제팀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NEC위원장 등이 루빈 인맥이다. 루빈 역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대중
대통령이다"며 공개적으로 자랑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말이 필요없는 대표적인 친DJ다. 현직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반해 김대중만 졸졸 따라다니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휘했다. 스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시간을 자랑스러워 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한국정부가 '국가원수' 대접을 하면 목에 힘이 들어갈만도 한데,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님께 '안부인사' 드리는걸 잊지 않았다.
티모르의 오르타장관(현 대통령):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
라우 독일 대통령: "김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독일이 한국의 금융위기 때 한국을 돕는 동기가 됐다"
미
셸 깡드시 前 IMF총재.."한국은 김대중씨를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자체를 행운(luck)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입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몇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IMF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 전반은 김대통령을 믿고 한국을 밀어준 측면이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엄청난 탄압에도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낸 김대통령은 만델라의 삶을 연상시킵니다."
조스팽 프랑스 총리.."김대통령은 나에게 살아가야 할 힘, 살아가야 할 도덕적 스승이자 길잡이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민주화뿐 아니라 경제의 재구축에 성공하고 있는 김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지도자 입니다..."
세계적 경제전문 통신 블룸버그..."김 대통령은 경제ㆍ정치ㆍ외교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반세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77세의 김대중씨는 한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의 업적을 이뤘다"
일
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세계에서 단임 5년에 김대중씨 만큼 변화시킨 대통령은 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김대중씨처럼 한국 경제에 공헌한 대통령은 없기 때문에 한국민은 떠나가는 김대중씨를 마음으로 부터 감사해야 한다"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이 반국가적 반이성적 수구보수 패권세력들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한국'이라면서 "나는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한국인들로 부터 로비 시도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처음있는 일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나라에서 반대 편지가 대량 전달된 것이 경상도라는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지역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노벨의 염원을 담고있는 평화상이 로비를 받아낼 수 있는 상이라면 과연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노벨상은 로비를 통해 수상할 수 있는 상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상이 얼마나 가치를 유지할수 있을까. 그러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의 위대함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받지 못하는지 그이유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며 통탄을 금치 못하였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바 있는 현 동티모르의 오르타 대통령도 월간 조선기자가 "김대중이 노벨상을 받으려고 로비를 한게 아니냐"며 집요하게 묻자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싶다. 질투 때문인가"라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럽연합의 맹주격인 독일쪽의 대통령들도 바이든 이상으로 DJ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임후 훈장도 수여하고 직접 도서관에 방문해 안부도 묻고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주지역까지 그 위상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리고 또한명
김대중대통령이 대한민국 제2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목하고 추천했으며
함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끼며
아꼇던 한 경상도 사나이
.
.
.
.
.
.
"김대중대통령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것
그 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 비전, 전략, 정책에서 역시 탁월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강대강 주변의 학자들이 적어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한 수준을 뛰어넘는 거죠.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가치, 전략, 정책 모두 탁월한 정치인입니다
해 외 다니면서, 외교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제가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대통령님 그분은 천재시지요 저는 그분을 매우 존경합니다"
바보 노무현이 존경했던 3명의 인물
링컨 , 김구 선생 ..그리고..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경상남도 김해
고향 : 전라남도 신안
학력 : 목포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대 대통령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민주당)
본관 : 전라남도 광주
고향 : 경상남도 김해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거주지 : 자유민국 민주동 하늘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2대 대통령
울지마라 민주주의야
지지마라 민주주의 여
노무현대통령과 같은 민주당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은 노대통령서거후
노무현 대통령과 전생에 가족이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한다
출처 :
http://durl.me/wqx
요즘 남북관계는 경제 문제처럼 파산 일보 직전입니다. 개성관광도 12월 1일부터 중단되고, 경의선 열차는 멈췄으며, 개성 공단마저 폐쇄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미 상주 인력 감축은 시작됐지요.
北 “개성관광 중단” 선언
경의선 열차 오늘 마지막 운행
"개성공단 폐쇄 배제 못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실용주의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실용주의의 실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비핵개방 3000입니다. 그런데, 말은 실용주의이지만 실상은 이전 정권과 다른 대북 강경 정책입니다.
대북 퍼주기라고 비판해오는 햇볕 정책의 폐기와 단절로 기존 대북 채널을 대부분 끊어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맙니다. 남북간 직통 핫라인도 대부분 단절됐죠.
MB의 강경 대북정책 김태효 靑 비서관이 주도
MB ‘5대 무시’ 정책, 남·북관계 파탄 위기
그런데, 대북 채널이 완전히 단절되고 남북의 대결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정부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책임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오늘 박형준 청와대 비서관의 말은 지금까지 정책과는 전혀 다른 적반하장의 진수입니다.
박형준, "10.4 선언 배치되는 일방적 파기" 11.28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28일 개성관광 중단 등 북한의 잇단 대남(對南) 강경조치와 관련, "북한의 이번 조치는 10.4 정상선언에 배치되는 일방적 파기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지지한다고 밝혀왔지만, 실상은 이를 무시하고 실행의의지를 전혀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전 정부의 업적이고 햇볕 정책의 산물이기에 남북정상간의 두 선언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하중 장관은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하는 6.15와 10.4 선언 이행에 대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두 선언의 정신은 존중하지만 선언 자체를 존중한다는 것은 완전히 방침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0.4남북정상선언 수용 요구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심쓰듯 해놓은 대북합의를 이명박 정부가 그대로 이행하기에는 수십조의 예산이 든다"며 "선뜻 받아주기가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공성진 의원은 "북한에 비핵화를 한 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해나가자고 제의를 하고 있는데, 북측이 일방적으로 6.15선언과 10.4선언을 답습하라고 강요를 하니까, 그것을 얘기해보자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홍정욱 의원의 경우 좀 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 '비핵·개방·3000'이라는 원칙에 막혀 아무것도 진전되고 있지 않다"며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경색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경협 수단 중 개성공단 완전 폐쇄를 제외한 모든 통로가 차단된 것은 '벼랑 끝 전술'의 결정판",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론에 대한 강도 높은 경고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결국 10.4 선언에 대해서는 이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합니다.
그는 이어 10.4남북정상선언 이행 문제와 관련해 "현실적으로 10.4선언은 이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우선 이런 문제들을 북한과 꺼내놓고 이야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요즘은 정권 초반에는 인정하지 않던 10.4선언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신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MB정부 6.15, 10.4 선언 정신을 존중한다" 김하중 통일부장관 11.27
이재정 전 통일 “10ㆍ4 선언, 현정부서 거의 사문화돼”
그렇지만, 실천없는 발표와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은 이런 노력이 단순히 수사어구에 불과함을 북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북한 인권에 대한 UN 결의안을 주도 하고 10·4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14조 이상이 든다고 하면서 실천이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인권결의안은 10.4 남북정상 선언 지지 대목이 빠지고 남북대화가 북한의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과 인권침해 책임자를 독립적 사법기관에서 처벌할 것 등을 북한 당국에 촉구하는 내용 등이 포함
이미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를 했고, 오바마 당선자의 대북 정책은 이전과 다른 대화를 기본으로 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른 외교 정책과 마찬가지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비핵개방3000"이라는 원칙을 제시했지만, 전혀 일관성없고 이전 정부와의 연속성이 없는 정책으로 스스로 북한과의 대화와 연결을 끊어버린 셈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6.15, 10.4선언도 중요하지만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 이라고하며 이전 10년 정부의 진일보한 합의를 무시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6.15 공동 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실천을 해야 된다, 비핵 개방 3000 같은 경우는 실패한 부시 정책을 뒤따라가는 그런 것이 아닌가, 결국 성공을 할 수 없을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와 힐러리 국무부장관 내정자 등이 모두 존경하고 존중하는 정책이며, UN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지지를 받은 정책”이었으나, 현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라는 정책은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도 지지한다는 말을 안했고, 전세계 어떤 국가로부터도 지지한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이어, MB정부의 비핵개방 3000 정책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말, 정책이라고 할 수도 없는 무능”이라고 통박했다.
결국 남북정책에 대해 총체적인 오류였습니다. 잘못된 정책은 대화와 교류의 단절만 불러왔습니다. 이제 개성공단마저 폐쇄될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간다면 이명박 정권 남은 4년간 계속 북한과의 단절을 불러올 것입니다
대북특사든 10.4선언 이행이든 이제 실천적 행동이 나와야 합니다. 선언적 의미의 발언만 하고 기자들 앞에서 발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부디 아래와 같이 쓸데없는, 생각없는 발언은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나 삼가해주시길 바랍니다.
MB, “北이 내 욕하는데 왜 가만히 있나” 강경 대응 주문?
개성공단 없다고 경제 무슨 악영향?” 박희태 발언 파문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통계네요. 무역수지 통계입니다.
한나라당이 말한 경제를 망친 "잃어버린 10년"동안 우리나라 무역 흑자는 최고였네요.
박정희때도 계속 적자였고, 80년대 후반 3고 호황때만 4년간 흑자.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0년간 흑자였습니다.
1961년부터 1997년까지 누적 적자만 700억 달러 적자. 김대중 정권에서 940억 달러 흑자로 모두 만회하고 노무현 정권때도 980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08년 들어 경제 대통령은 다시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참고 포스트 : 년도별 무역수지와, 국민소득의 변화. (1962~노무현정권까지.)
http://minwon.mocie.go.kr/user.tdf?a=common.HtmlApp&c=1001&page=child/trade/trad_scale_pop01.vm
년도 | 대통령 | 무역수지 (달러) | 1인당 국민소득(달러) | ||
1961 | 박정희공화당 | -2억8천만 | | | |
1962 | 박정희공화당 | -3억7천만 | | | |
1963 | 박정희공화당 | -4억7천만 | | | |
1964 | 박정희공화당 | -2억9천만 | | | |
1965 | 박정희공화당 | -2억9천만 | | | |
1966 | 박정희공화당 | -4억7천만 | | | |
1967 | 박정희공화당 | -6억8천만 | | | |
1968 | 박정희공화당 | -10억 | | | |
1969 | 박정희공화당 | -12억 | 210 | 345 | 1,670 |
1970 | 박정희공화당 | -11억 | 249 | 389 | 1,984 |
1971 | 박정희공화당 | -13억 | 286 | 443 | 2,189 |
1972 | 박정희공화당 | -9억 | 316 | 522 | 2,855 |
1973 | 박정희공화당 | -10억 | 394 | 695 | 3,836 |
1974 | 박정희공화당 | -24억 | 540 | 920 | 4,206 |
1975 | 박정희공화당 | -22억 | 592 | 964 | 4,475 |
1976 | 박정희공화당 | -11억 | 799 | 1,132 | 4,976 |
1977 | 박정희공화당 | -7억6천만 | 1,009 | 1,301 | 6,069 |
1978 | 박정희공화당 | -23억 | 1,399 | 1,577 | 8,457 |
1979 | 박정희공화당 | -53억 | 1,636 | 1,920 | 8,736 |
| 계 | -250억 달러 적자 | | | |
1980 | 전두환 정부 | -48억 | 1,598 | 2,344 | 9,257 |
1981 | 전두환 정부 | -49억 | 1,749 | 2,669 | 10,050 |
1982 | 전두환 정부 | -24억 | 1,847 | 2,653 | 9,295 |
1983 | 전두환 정부 | -18억 | 2,020 | 2,823 | 10,132 |
1984 | 전두환 정부 | -14억 | 2,190 | 3,167 | 10,734 |
1985 | 전두환 정부 | -8억5천만 | 2,229 | 3,297 | 11,544 |
1986 | 전두환 정부 | 31억 | 2,550 | 3,993 | 16,907 |
1987 | 전두환 정부 | 63억 | 3,201 | 5,298 | 20,414 |
| 계 | -59억 달러 적자 | | | |
1988 | 노태우 정부 | 89억 | 4,268 | 6,379 | 24,517 |
1989 | 노태우 정부 | 9억 | 5,185 | 7,626 | 24,325 |
1990 | 노태우 정부 | -48억 | 5,886 | 8,111 | 25,090 |
1991 | 노태우 정부 | -97억 | 6,810 | 8,982 | 28,424 |
1992 | 노태우 정부 | -51억 | 7,183 | 10,506 | 30,926 |
| 계 | -98억 달러 적자 | | | |
1993 | 김영삼 정부 | -16억 | 7,811 | 10,964 | 35,488 |
1994 | 김영삼 정부 | -63억 | 8,998 | 11,806 | 38,843 |
1995 | 김영삼 정부 | -100억 | 10,823 | 12,686 | 42,667 |
1996 | 김영삼 정부 | -210억 | 11,385 | 13,260 | 37,807 |
1997 | 김영삼 정부 | -85억 | 10,315 | 13,592 | 34,730 |
| 계 | -374억 달러 적자 | | | |
1998 | 김대중 정부 | 390억 | 6,744 | 12,360 | 31,841 |
1999 | 김대중 정부 | 239억 | 8,595 | 13,235 | 35,921 |
2000 | 김대중 정부 | 118억 | 9,770 | 14,188 | 38,019 |
2001 | 김대중 정부 | 93억 | 9,000 | 12,876 | 33,389 |
2002 | 김대중 정부 | 103억 | 10,013 | 12,900 | 31,868 |
| 계 | 943억 달러 흑자 | | | |
2003 | 노무현 정부 | 150억 | 12,720 | 12,700 | 34,169 |
2004 | 노무현 정부 | 294억 | 14,162 | 14,560 | 37,173 |
2005 | 노무현 정부 | 232억 | 16,291 | 15,482 | 34,188 |
2006 | 노무현 정부 | 158억 | 18,351 | 15,471 | 34,954 |
2007 | 노무현 정부 | 146억 | 20,946 | 16,160 | 36,021 |
| 계 | 980억 달러 흑자 | | | |
2008 | 이명박 정부 | -105억 | | | |
언론소비자 주권 국민캠페인 펌 (http://cafe.daum.net/stopcjd)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 후보만들기에 성공한 이후, 다시 조선일보는 정권때리기에 나선 듯 싶다.
이명박 후보의 같은 의혹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실보도만 하거나, 단신 처리로 일관하고 본질은 호도한채 부동산 투기 사실 입수의혹, 개인 정보 보호, 초본 입수과정등을 내세워 보호하더니, 정권때리기에 관해서는 지금까지의 조선일보 파헤치기 실력을 다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영부인의 20촌까지 밝혀냈던 조선일보 아니던가!)
어제부터 열을 올리고 있는 "신정아"씨 권력 무마 의혹을 보자.
오늘 기사에서는 신정아씨의 "채무불이행자" 사실과 빚을 밝히고 있다. 고급원룸이라면서 전세 9천만원이라고 적고있고(서울 원룸 9천만원이 고급원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개인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호화 생활로 적어서 매도 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에 앞장서오더니, 이번에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개인 생활을 까발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권력형 의혹으로 규정하고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설사 권력형 의혹이라고 하더라도, 과거 정권들의 정권말기 권력형 비리에 비하면 참 보잘 것 없다.그리고, 권력이 개입해서 뭘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실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누구도 나서서 이야기한 적은 없는데, 말도 안 꺼냈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한다. 정황상 꺼냈을 것이라고 하는데, 정황상 부동산 투기의혹이 있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절대 정황 증거를 적용시키지 않는다.
'신정아 가짜학위' 권력 무마 의혹
DJ의 "훈수"도 마음에 안드나보다. YS의 말도 안되는 훈수들에는 항상 여과없이 보도해오던 조선일보는 DJ의 훈수에 [사설] 국민들 지치게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사설과 "DJ,노벨평화상 수상한 원로답게 처신을…" 같은 기사로 내려치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의 각종 발언들에도 이런 기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조선일보의 스토커에 넌덜머리가 날것이다. 어쩔수없다. 꼬리잡힐 말 실수를 했으니,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만약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조선일보는 노인 폄하 발언을 다시 이슈화 할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의 말실수에 대해서는 1회성보도에 그치지만, 자신들의 마음에 안 드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스토커처럼 그 말들이 원죄처럼 따라다닌다.
마지막으로 이슈화 시키려는 듯한 론스타 문제. 서울시의 AIG 문제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AIG 문제에 관해서 사실 보도라도 좀 보고싶다!
이후보의 경선승리에 도움을 줬으니, 다시 한번 정권 때리기에 힘을 쏟아 마지막 승리를 다지려나보다. 그런 일은 결코 언론의 몫이 아닌데, 우리나라 1등신문이 다시 나섰다.
조선일보여 제발 언론답게 처신해달라.